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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의 삼성전자' 탄생 막는 '4대 족쇄' 해결이 우선과제

수수료 현실화·정보 공유·정책금융 해방·은산분리 완화

금용업계 오랜 숙원사업 '패키지 해법' 나올지 관심

한 시중은행 영업점에서 직원들이 고객을 응대하고 있다. 금융사들은 이른바 4대 숙원사업이 해결되지 않은 채 자체 노력만으로는 ''금융의 삼성전자''가 탄생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서울경제DB


시중은행의 한 여신사업부 임원은 올 초 고민에 빠졌다. 신임 행장이 기술금융 실적을 독려했지만 리스크 문제 등을 고려했을 때 이 사업에 공을 들일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민은 얼마 안 가 다급함으로 바뀌었다. 지난 1월 금융위원회의 '은행혁신성 평가'가 공개된 후 기술금융이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기 때문이다. 100점 만점에 기술금융 항목이 40점이나 되는 상황에서 향후 평가점수를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기술금융 독려가 필요했다. 대부분의 은행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 덕분에 기술금융 실적은 지난달 이미 연간 목표치 20조원의 90%에 육박하는 등 과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 향후 기술금융에 따른 부실 우려는 뒷전이다.

금융사업자들이 정부 규제에 신음하고 있다. 계좌이체나 자동화기기(ATM) 수수료 등을 현실화해 수익성을 개선하고 싶지만 당국 눈치 때문에 엄두를 내지 못한다. 은행·카드·보험·증권 등 금융지주 산하의 계열사들이 보유한 고객정보를 활용해 신규 시장을 창출하려 해도 정보 공유 제한이라는 벽이 가로막는다. 인터넷전문은행이라는 새로운 먹거리는 은산분리 규제로 사실상 그림의 떡이다. 이른바 △수수료 현실화 △지주사 산하 계열사 간 정보 공유 활성화 △정책금융 압박으로부터의 해방 △인터넷은행과 관련한 은산분리 완화라는 4대 숙원사업에 대한 개선 없이는 '금융의 삼성전자'가 나오기 힘들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멀기만 한 수수료 현실화=시중은행들의 가장 큰 수익창구는 예금금리와 대출금리의 차이를 통해 벌어들이는 이른바 예대마진이다. 전체 순이익의 90%가량을 차지한다. 수수료 관련 수입은 10%에 불과하다. 선진국 은행들의 수수료 수입 비중이 30%에 달하는 것을 감안하면 예대마진에 대한 의존도가 기형적으로 높다.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지난달 "다른 산업은 죽기 살기로 상품을 개발하고 부가가치를 높이려 하는데 금융업은 예대금리 차이만 바라보고 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금융사들은 억울하다. 은행의 수수료를 통제하고 있는 곳은 바로 금융당국이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중도상환수수료까지 인하 압박을 받고 있지만 안심전환대출로 인한 중도상환수수료 손실액만 3,400억원가량으로 추정되는 상황이다. 시중은행의 한 자금담당자는 "외국에서는 평균잔액이 일정 금액을 넘지 않으면 계좌 보유만으로도 수수료를 떼가는 등 다양한 형태의 수수료가 있다"며 "당국이 수수료와 관련한 재량권을 주지도 않으면서 '은행이 예대마진에만 의존한다'고 비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밝혔다.



◇신규 먹거리 창출도 요원=계열사 간 고객정보 공유를 금지한 '금융지주회사법 시행령'은 아예 금융지주사의 존재목적 자체를 부정하는 규제로 꼽힌다. 지난해 카드사 개인정보 유출사태 후 제정된 이 시행령은 마케팅 목적의 고객정보 공유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빅데이터와 같은 첨단기술을 각 계열사 내부에서만 활용하도록 족쇄를 달아둔 셈이다. 금융지주사들은 오는 9월 계좌이동제 시행을 앞두고 카드와 은행·증권 등의 서비스를 묶은 복합상품 출시를 검토 중이지만 반쪽자짜리 시장분석만 가능한 상황이다.

금융위가 야심 차게 추진하고 있는 인터넷은행과 핀테크산업 등도 규제가 풀리지 않으면 공염불에 불과하다. 대표적인 게 은행에 대한 산업자본의 지배를 막는 은산분리 규제다. 경제력 집중과 산업자본의 리스크 전이 등을 막기 위해서 금산분리의 큰 틀은 유지한다는 입장이지만 세계 금융산업의 대세인 정보통신기술(ICT)과 금융의 융합에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일부 은산분리 완화가 불가피하다. 전체 지분의 4%까지만 소유할 수 있도록 하는 은행법하에서는 정보기술(IT) 기업들의 인터넷은행 진출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금융위는 자산 규모 5조원 이하의 기업에 대해서는 30%까지 인터넷은행 소유를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지만 금산분리 원칙에 가로막혀 국회 통과에 난항이 예상된다. IT 기업 관계자는 "외국에서는 구글·애플·페이스북·알리바바 등 IT 기업 주도로 기존과는 다른 차원의 금융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데 반해 한국은 크게 뒤처져 있다"며 "금산분리 완화가 되지 않는다면 한국형 인터넷은행은 기존 은행의 인터넷 버전에 불과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이와 함께 현 정부의 기술금융과 같이 은행 혁신성 평가에서 배점을 달리하는 방식 등으로 정책금융에 금융사들을 대거 동원하는 행태도 대표적 문제로 손꼽힌다.

정부 규제가 국내 금융산업을 좀먹고 있다는 사실은 국내에 진출한 외국계 금융사들도 공통으로 지적하는 부분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지난해 이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응답기업의 64.2%가 한국 금융산업의 최대 문제점으로 '과도한 규제와 정부의 과도한 개입'을 꼽았다. 다른 곳도 아닌 당국이 금융사의 성장을 가로막는 셈이다. 윤창현 전 금융연구원장은 "미국 은행들은 비이자수익 비중이 45%에 달하는 반면 국내 은행은 10%가량으로 상당한 차이가 있다"며 "지주사 정보 교환 문제 등 금융사의 본질적인 경쟁력 향상을 위해서는 결국 당국이 풀어줘야 하는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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