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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진단] 말로만 지원… 보증 현장선 나몰라라

[관료주의가 중기 망친다] <br>재창업지원위·청년전용창업자금 대출 기준 까다로워 '그림의 떡'<br>"형평성 없다" 지적에도 당국 외면


#전자업체 A사의 B대표는 요즘 마음이 무겁다. 지난 2005년 사업실패 후 뼈를 깎는 노력 끝에 재창업에 성공해 이달 들어 벤처기업인증까지 획득했다. 그는 또 지난해 신용회복 절차를 밟아 신용불량자 신세에서 벗어났다. 연대보증으로 그의 이름으로 남아 있던 기술보증기금 채무 4억원을 대위변제해 정상채무로 만들었다.

사실상 재기에 성공한 셈이다. 그러나 그의 회사는 여전히 기보의 보증을 받을 수 없다. 빚을 다 갚아야 신규 보증을 해줄 수 있다는 기보 내규 때문이다. B대표는 "이달 초 금융위원회가 재창업 활성화 대책을 내놓은 뒤 신용불량자 상태에 놓인 기업인들은 채무상환을 유예하면서 재기자금을 확보할 길이 열렸다"며 "하지만 기존에 재기 노력을 했던 기업인들은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6개월 전 창업한 벤처기업 C사의 D대표는 중소기업진흥공단에 올 들어 신설된 청년전용창업자금을 신청하러 갔다가 '대출불가'라는 답을 들었다. 이미 기보에서 청년창업특례보증 3,000만원을 받았다는 게 이유였다.

얼마 뒤 그는 벤처업계 모임에서 황당한 얘기를 들었다. 중진공 청년전용창업자금을 먼저 받은 기업은 기보의 청년특례보증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D대표는 "둘 다 창업자들이 창업 종잣돈을 마련하기 위한 제도들인데 무엇을 먼저 신청하냐에 따라 혜택을 받을 수 있고 없고가 차이 나는 게 말이 되느냐"며 어이없어 했다.

올 들어 실패기업인과 청년창업을 활성화하기 위한 대책이 쏟아지고 있지만 새로운 제도와 충돌하는 기존 규제가 기업인들을 좌절시키고 있다.

지난 2일 금융위원회는 신용회복위원회 산하에 재창업지원위원회를 신설하고 실패기업인 재기 돕기에 나섰다. 심사를 통해 총 채무 30억원 이하인 중소기업인들의 신용회복을 시켜주고 채무조정과 상환유예를 해주는 동시에 신용보증기금ㆍ기보ㆍ중진공 등과 연계해 최대 30억원의 재창업자금을 지원해주는 게 골자다.

문제는 이에 앞서 신용회복ㆍ재창업 등 재기에 나선 사람들은 이 같은 지원을 못 받는다는 점이다. B대표는 "이미 재기 노력을 했다는 이유로 지원대상에서 배제하는 것은 형평성이나 제도의 취지와 맞지 않는다"며 "심사를 거쳐 사업성이 있는 재기기업들도 상환유예, 추가 보증 등 지원이 가능하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신ㆍ기보 등 보증기관은 재창업위원회의 조치는 예외적인 경우로 일반 신규 보증은 일단 기존 채무를 다 갚아야만 검토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기보의 한 관계자는 "기보에 지고 있는 채무를 모두 다 갚아야 보증 금지가 풀리고 새로운 보증이 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청과 중진공에서 마련한 청년전용창업자금도 이해할 수 없는 규정으로 묶여 있기는 마찬가지다. 청년전용창업자금은 만 39세 이하인 대표자가 지식서비스ㆍ문화콘텐츠ㆍ제조업 등 사업을 시작할 경우 5,000만원(제조업 1억원)을 대출해주는 제도다.

이 자금은 신ㆍ기보에서 청년창업특례보증을 받았던 기업들은 받을 수 없다. 그러나 중진공 자금을 먼저 받고 신ㆍ기보 보증을 나중에 신청한 기업들은 양쪽 자금을 모두 활용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중진공의 한 관계자는 "제한된 자금(1,300억원)을 효율적으로 운용하기 위해 다른 정책자금 지원을 받은 기업들은 신청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으로 결정했다"며 "신ㆍ기보 보증을 받은 기업은 '창업기업지원자금'을 받도록 유도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중소업계에서는 창업지원자금은 업력 5년 이내 기업까지 대출 대상이기 때문에 업력 1년 이내 초기기업들은 사업성 평가에서 밀려 사실상 자금을 받기 힘들다고 호소하고 있다.

신청 순서에 따른 형평성 문제에 대해서는 중진공과 기보 모두 "타 기관의 방침이기 때문에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라고 외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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