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은 이순신 장군이 조선을 침략한 일본의 토요토미 히데요시를 물리친 승리의 전쟁으로 한국사람들의 머리에 깊이 각인돼있다. 그러나 일본으로 건너면 일본이 토요토미 히데요시를 앞세워 대륙 침략의 선구적인 업적을 이룬 전쟁으로 기록돼 있다. 그러나 임진왜란은 한ㆍ일 양국간에 벌어진 지엽적인 전쟁이 아니다. 임진왜란을 통해 일본이 동아시아에서 부각됐으며, 중국 중심으로만 움직였던 동아시아 역학구도를 깨뜨리는 데 큰 역할을 한 사건이다. 임진왜란이 이처럼 동아시아의 패러다임을 바꾼 역사적인 사건이라는 것이 일반인들에게 보편화되기에는 다소 거리가 있다. 정두희 서강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를 필두로 한 국제한국학센터는 16세기 동아시아 최대의 전쟁으로 국제 질서를 새로 재편한 임진왜란을 새롭게 조명하는 작업을 2년간 진행해 왔다. 책은 그 성과물을 엮은 것이다. 13명으로 이루어진 국내외 저자들은 한ㆍ중ㆍ일 삼국이 민족주의적 입장에서 자국이 승리한 전쟁으로 미화시켜 온 과거의 임진왜란에 대한 연구경향을 극복하기 위해 전쟁에 대한 기억이 만들어져 가는 양상을 파헤쳤다. 그리고 이 전쟁이 동아시아 세계의 국제적 전쟁이라는 관점에서 재구성했다. 케네스 R. 로빈슨 일본 국제기독교대학 교수는 '고지도 속에 담긴 일본'이라는 글에서 16세기 조선시대 때 발견된 고지도에 투영된 임진왜란의 과정과 이를 통해 일본이 아시아에서의 위치가 어떻게 달라지 그 과정을 흥미롭게 설명한다. 또 계승범 UCLA교수는 '임진왜란과 누루하치'라는 글을 통해 임진왜란 동안 누루하치를 중심으로 한 여진족의 동태와 여진족의 통일 작업이 진행된 과정을 상세하게 설명한다. 임진왜란 동안 만주의 여진족이 7년간의 전쟁을 통해 명나라와 조선의 간섭에서 벗어나 통일의 과정을 밟을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준 것이다. 책은 임진왜란이 16세기 동아시아 역사에서 새로운 중심의 탄생을 예고하는 큰 사건이였으며 이러한 변화의 틀에서 임진왜란이 새롭게 조명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한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