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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경제소사/9월11일] 부관연락선


[오늘의 경제소사/9월11일] 부관연락선 권홍우 편집위원 1905년 9월11일 밤, 부산. 여객선 일기환(壹岐丸ㆍ이키마루)이 항구에 들어섰다. 최초의 부관(釜關) 정기연락선이 도착한 순간이다. 최고속도인 시속 14노트로 11시간30분 동안 달려온 배는 승객 300여명을 토해냈다. 러일전쟁 승리를 업은 일본은 부관항로에 온 힘을 기울였다. 경부선ㆍ경의선과 함께 대륙행 직항편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식사가 포함된 뱃삯은 1등실 12엔, 2등실 7엔, 3등실 3엔50전. 쌀 한 가마에 5엔이었으니 낮지 않은 가격이었지만 배는 늘 붐볐다. 사람과 물자의 이동이 많아지자 일제의 국영회사 산요(山陽)기선은 크고 빠른 배를 속속 선보였다. 1913년부터 투입된 3,020톤짜리 고려환과 신라환은 여객 603명을 싣고 16노트로 현해탄을 오갔다. 1922년부터는 3,619톤급 20노트짜리 경복환과 덕수환ㆍ창경환을 연이어 투입했어도 수요를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여객이 넘쳤다. 배가 확충된 것은 1936년부터. 7,081톤에서 7,960톤의 덩치에 여객 2,048명을 싣고 시속 23노트를 내는 대형 여객선 금강환과 흥안환, 천산환과 곤륜환을 투입하고야 여객 정체가 풀렸다. 1942년에는 이용객 300만명을 넘어섰다. 특이한 대목은 여객선의 이름. 대한해협의 섬인 일기와 대마로 시작해 조선의 옛 국호와 궁궐 이름, 명산까지 섭렵한 뒤 만주ㆍ몽골 접경 흥안령산맥을 지나 히말라야(천산)와 전설상의 곤륜산까지 뻗어나갔다. 누가 지었는지 일제의 대륙침략 경로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일제 패망과 함께 사라진 부관연락선은 1970년 부관페리라는 이름으로 부활, 민간 교류의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사의 찬미’를 불렀던 윤심덕이 빠져 죽은 처절한 낭만의 바다 정도로 기억되고 있는 현해탄. 침략의 뱃고동은 과연 완전히 끊겼을까. 입력시간 : 2007/09/10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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