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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 탄생 100년] 기업인 1세대, 요즘 기업인과 확실히 달랐다

국산화 의지·'수출로 안을 살찌운다'는 자부심

아산 정주영은 생전에 크게 두 가지를 자랑스럽게 여겼다고 전해진다. '밖에서 벌어 안을 살찌운다'와 '내 힘으로 기업군을 일궈냈다'는 자부심이다. 지난 1988년 5공 청문회에서 전직 대통령들에 대한 정치자금 제공을 추궁받던 당시에도 아산은 유독 한 부분에서는 당당하게 답변해 깊은 인상을 남겼다. "특혜 받은 것 없이 사업을 영위해왔다"는 것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변이 일어날 때마다 '재벌'들이 사정의 타깃이 될 만큼 정경유착으로 성장한 기업이 적지 않았지만 아산 자신은 정부로부터 기업 인수나 독점사업 불하 같은 특혜를 받지 않았다는 점을 자랑으로 여겼다.

'현대만큼은 밖에서 벌어 안을 살찌웠다'는 인식도 적어도 1990년대까지는 대다수 국민의 뇌리에 박혀 있었다. 국내 산업의 시발점이 내수 경공업인 3백 산업(밀가루·설탕·제분)이며 대부분의 재벌기업군이 여기서 시작해 성장한 것과 달리 현대는 미군 공사를 따내 달러를 벌거나 전후 복구공사를 통해 기반을 넓혔다. 이후 해외 건설과 조선·자동차로 현대는 내수보다 수출에 앞장서는 기업군이라는 이미지를 굳혔다.

아산은 유달리 '국산'에 대한 애착이 강했다. 해외 메이저 자동차 회사의 기술제휴 유혹을 물리치고 고유 모델에 집착해 오늘날 현대·기아자동차의 초석을 놓았다. 선주들의 인수거부로 미아가 된 거대 유조선으로 해운회사를 직접 차려 '한국이 만들어 한국인 선장과 선원이 몰아 한국이 사용할 원유를 수송하는 국적 유조선단'의 진용을 갖추고 해운한국의 씨앗도 뿌렸다. 누구도 생각지 못한 거대 조선소와 초대형 유조선, 한국의 기술과 인력으로 만든 고속도로까지 아산의 일생은 '국산화'로 일관한다. 오늘날 세계 최일류 전차를 생산하는 방위산업의 기반 또한 어떤 업체도 엄두를 내지 않았던 1970년대 중반 미군 전차 개량사업(M-48K3, M-48K5)에 대한 아산의 용단과 박정희 대통령의 지원에 기인한다.



아산 정주영뿐이 아니다. 세계적 기업인 삼성전자를 낳은 호암 이병철도 '사업보국(事業報國)'을 최고의 경영철학으로 지켰다. 법인세 인상 논의만 나오면 사업장을 중국이나 싱가포르·베트남으로 이전하겠다고 엄살을 피우는 요즘 기업들과 1세대 기업인 사이에는 분명한 인식차이가 존재한다. 국가를 위한다는 목표 아래 고속으로 질주한 1세대 창업기업인들과 요즘 기업인들과의 거리감과 반비례하며 한국의 발전 역시 탄력을 잃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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