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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협상 이제부터다

멕시코 칸쿤에서 열렸던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가 합의문을 채택하지 못한 채 막을 내렸다. 농업시장 개방을 걱정하는 농민들이 안도를 하고, 현지에 달려가 반대 집회를 열었던 농민대표들과 시민단체들이 회의가 끝난 후 꽹가리를 치며 `승리`를 기뻐하는 사진이 신문에 실리기도 했다. 그러나 칸쿤에서 최종합의를 못 이룬 것은 농산물이 아닌 다른 쟁점, 예를 들어 정부조달시장을 투명하게 하자든지 카르텔을 불법화 해야 한다든지 하는 등의 소위 싱가폴 이슈 때문이다. 농산물시장개방에 대한 세부원칙은 각료회의에서 초안이 마련됐으며, 이를 토대로 금년 12월 이전에 고위대표 회의에서 논의를 계속하도록 예정돼 있다. 따라서 한번의 회의가 끝났다고 해서 승리를 기뻐할 수 없고, 안도의 여유를 가져서도 안 되는 것이 농업의 현실이다. 그런데 농산물 협상에 대한 우리의 자세 속에는 `이 번만 넘겨보자`하는 전략 아닌 전략이 은연중 자리잡고 있다.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 때부터 지금까지 국제적인 흐름에도 맞지 않고 장기적인 농업의 방향과도 거리가 먼 지연전술이나 임기응변이 우선했다. 그래서 UR협상에서 쌀시장 개방을 않겠다는 대통령 선거공약이 제시됐고, 협상이 끝난 후에는 여론을 의식해 국무총리와 장관을 해임하는 일도 있었다. 쌀 관세화를 유예(猶豫) 받고서도 마치 예외(例外)를 인정받은 것처럼 전과 똑 같은 정책을 정부와 국회가 계속해 왔고, 농민도 이를 당연하게 여겨 다음 협상에서 또 한번의 유예를 받아 내도록 요구하고 있다. 칠레와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고도 국회의 비준을 늦추고 있다. 농업에 대해 10년 동안 70조원을 투자했으나 농업의 구조조정이나 경쟁력의 개선효과는 미미했다. 연례적으로 농가부채탕감을 해왔으나 농민들이 빚은 더 늘었다. 농업협상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칸쿤에서 채택되지 못한 농업개방 세부원칙이 제네바에서 논의될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관세 인하와 보조금 축소에 대한 기준이 결정될 것이다. 내년에는 UR에서 유예받은 쌀 개방 협상을 해야 한다. 이 협상은 미국 중국 등 직접적인 이해당사자와 부딪쳐야 하는 협상으로 그 부담이 한층 무거울 수도 있다. 지연전술은 더 이상 전략이 될 수 없다. 얼마간 시기가 늦춰질 수 있을 지는 몰라도 근본적인 흐름을 바꿀 수는 없기 때문이다. 고귀한 생명을 희생하신 농민대표한테는 유감스럽고도 안타까운 일이지만 몸을 던지는 표현방식으로도 해결되는 일이 아니다. 길은 두 가지다. 먼저 협상에서는 우리농업이 필요로 하는 방향으로 결과를 유도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을 해야 한다. 이번 협상에서 우리와 같은 입장을 취한 국가는 10개국 정도로 소수였다. 그 가운데도 농업의 비교역적 기능(NTC) 같은 우리의 입장을 초안에 반영시켰는데 앞으로 이 원칙이 최대한 지켜지고 반영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관세 감축 폭의 축소와 최소수입물량의 조절에도 유의해야 한다. 이번에 유럽 등 선진국에서 많이 시행하고 있는 수출 보조금을 줄이기로 합의한 것은 우리에게 크게 불리할 것이 없다. 다만 국내 보조금의 감축에 관한 원칙은 우리와 밀접한 관련이 있으므로 우리의 농업현실과 제도에 비추어 유리한 방향이 되도록 해나가야 한다. 다음으로 우리농업을 발전시키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다. 호당 경지면적이 0.5 ha 미만이 33%가 넘는 상황에서 현재 생산하고 있는 모든 농산물을 그대로 유지한 채 기존의 제도를 지속하여서는 국제경쟁력을 갖추기 어렵다. 회생이 어려운 부분에는 파격적인 지원과 함께 구조조정을 하고, 경쟁력이 있는 부분은 집중 육성해야 한다. 영세농업과 고령화 현상 등 우리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일본의 노력도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일본은 농업개방의 어려움을 헤쳐 나가기 위해 농지 집약화를 시도하고 신품종 개발과 유통혁신 등을 통해 경쟁력을 키워 나갔으며 쌀 관세화로 전환이 가능하도록 가격경쟁력을 확보했다. 농업과 농촌을 적정수준으로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장기적인 비전을 서둘러 마련하고 이를 착실히 실천하는 것이 끝나지 않은 농산물 협상과 농업 개방시대의 파고에 대응하는 올바른 길이다. <현정택 인하대 국제통상학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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