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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여름 기업은행장 집무실.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과 윤용로 당시 기업은행장이 마주했다. "600억원을 무이자로 빌려 주십시오"김 회장이 상상 밖의 요구를 꺼내들었다.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2%가 마지지노선입니다"윤 행장의 어조는 단호했다.
"이자를 물면서는 DMC 타워를 지을 수 없습니다. 대신 노란우산공제 부금액 1조원을 임기내 달성해 기업은행 수익에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최후통첩 뒤 김 회장은 신한은행과의 협상을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만요. 제안을 받아들이겠습니다. 600억원을 무이자로 대출해드리죠."금융역사상 초유의 600억원 무이자 장기 대출이 이루어진 순간이자, 중소기업DMC타워가 출항할 수 있는 동력을 확보한 자리였다.
'중소업계의 꿈'인 상암동 중소기업DMC타워가 우여곡절 끝에 19일 준공했다. 돈 한푼 없이 시작해 1,300억원짜리 빌딩을 짓기까지 그 과정은 그야말로 고비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난제 해결에 발벗고 나선 김기문 회장을 비롯한 중기중앙회장단, 중소업계의 의지와 도전 등 불굴의 '중소기업 정신'이 매 순간 '기적'을 불러왔다.
돌이켜보면 부지 확보부터가 기적이었다. 2002년 대통령 공약에 힘입어 서울시에서 건립부지 지원 의사 표명이 시발점이었다. 하지만 김 회장은 제공받은 부지가 여러가지 제약과 조건이 붙어 별 도움이 안된다는 판단 아래 과감히 반납 의사를 밝혔다. 뜻밖의 결정에 당황한 서울시는 몇 군데 알짜배기 땅을 제시했고, 결국 현재 인천공항철도, 경의선, 6호선이 교차하는 상암동 요충지를 확보할 수 있게 됐다.
땅값 지불도 기적에 가까웠다. 부지를 조성원가로 매입하려 했지만 규정상 중기중앙회는 공시지가로 매입해야 한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었다. 반면 중소기업진흥공단은 조성원가 매입이 가능하다는 점을 안 중앙회는 규정을 독파한 결과 문구 하나만 수정하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결국 김 회장은 이용섭 전 건설교통부장관과 만나 전후 사정을 알렸고, 한달 뒤 조성원가 매입이 가능하다는 결과를 통보받았다. 백방으로 뛰어다닌 끝에 비싸게 땅값을 지불할 위기를 벗어난 것이다. 당시 평당 400만원대에 매입한 부지는 지금 3,000만원을 호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은행 대출 외에 나머지 자금 조달 과정도 한편의 드라마나 다름없다. 김 회장은 달랑 사업 계획서 1장만을 들고 삼성의 문을 두드렸다. 그룹 고위 관계자를 3번이나 만났고, 상생협력 차원에서 250억원 지원 약속을 받아냈다. 김 회장은 삼성에 이어 현대차에서도 100억원을 지원받았다. 특히 당초 정부의 재정보조금이 50억원으로 책정됐으나, 김 회장이 정부 관계자들을 수차례 설득한 끝에 113억원으로 배 이상 끌어 올렸다.
이에더해 제주도의 배추장사에서부터 레미콘업계의 '한차 기부운동'등 협동조합과 관련단체들까지 뜻을 모아 십시일반으로 기부운동에 참여하면서 DMC타워는 한층 한층 올라갔다. 결국 30개월 공사기간 끝에 연면적 6만1,895㎡(1만8723평), 지상 20층, 지하 6층의 '중소벤처기업 메카'로 우뚝서게 됐다.
서병문 중기중앙회 수석 부회장은 "중소기업인들의 개척정신이 DMC타워 건립의 바탕이 됐다"며 "하지만 김기문 회장이 아니었다면 결코 불가능한 사업"이라고 중소업계에 남긴 김 회장의 족적을 높이 평가했다.
첨단 인텔리젠트 빌딩인 중소기업DMC타워는 중소ㆍ벤처기업 50여사가 입주할 예정이다. 벤처ㆍ창업기업의 인큐베이팅 기능을 통해 디지털미디어, IT, 문화콘텐츠 등 미래성장산업분야 중소기업 육성의 산실로 자리잡게 될 것이라고 중앙회측은 설명했다.
김기문 회장은 이날 준공식에서 "중소기업인의 기부와 국가ㆍ지자체ㆍ민간협력으로 300만 중소기업 랜드마크가 마련돼 중소업계에 꿈만 같은 일이 이뤄져 가슴이 벅차다"며 "기술력은 있지만 초기 자본력이 약한 첨단 중소벤처기업을 입주시켜 히든 챔피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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