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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이 5~10%대인 회색지대 저축은행을 대상으로 정부가 공적자금(금융안정기금)을 지원하겠다고 밝혔음에도 여전히 신청이 저조하다. 당초 1차 마감기간까지 단 한 곳도 신청하지 않자 정책금융공사는 신청기간을 한달 연장했다. 오는 21일이 마감일이다. 그런데도 3~4곳만 자금지원을 받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과연 추가 지원을 받지 않아도 될 정도로 이들 저축은행의 사정이 나아진 것일까. 아니면 '부실 딱지'를 피하기 위해 공적자금의 손길을 피한 대가를 다시 치르고 말 것인가. ◇저조한 금안기금 신청=정책금융공사는 당초 저축은행의 금융안정기금 이용방식을 대주주와의 1대1 매칭 방식 증자로 정했다. 하지만 신청자가 없자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비율을 1대3으로 완화했다. 금리도 시장금리를 따르되 협의할 수 있도록 조정했다. 그런데도 저축은행들의 반응은 여전히 싸늘하다. 실제로 여전히 기금을 신청한 저축은행은 몇 군데 안 된다. 지난 6월 말 국제결제은행(BIS) 비율 기준으로 금안기금을 신청할 수 있는 저축은행이 24곳이나 되는데도 한결 같이 피한 것이다. 금융감독당국의 한 관계자는 "대형사는 하지 않으려고 하고 지방의 중소형사 위주로 신청을 하려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물론 저축은행이 신청을 꺼리는 것은 일면 당연하다. 저축은행이 금안기금을 신청하면 자금 지원을 받음과 동시에 정책금융공사와 약정(MOU)을 맺게 된다. 공사로부터의 관리감독이 불가피한 게 싫다는 얘기인데 쉽게 말해 곳간 열쇠를 정부에 내어주지 않겠다는 뜻이다. 대형 저축은행의 한 관계자는 "차주들에게 대출 한도를 더 늘려주고 조속히 집행하는 게 저축은행의 장점인데 정책금융공사로부터 관리인이 파견되면 그 과정이 늦어지는 등 영업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면서 "내부적으로 논의는 있었지만 일단 정면돌파하자는 게 대세였다"고 말했다. ◇회색지대 저축은행 괜찮을까=그렇다면 공적자금을 이용하지 않는 나머지 회색지대 저축은행들은 실적이 개선됐을까. 결산 결과를 보면 일부 대형 저축은행은 실적이 좋아지는 추세다. 6월 말 현재 BIS 비율 9.16%였던 솔로몬은 2011회계연도(2011. 7월~2012. 6월) 1ㆍ4분기(7~9월)에 200억원, BIS 비율 6.15%였던 현대스위스는 300억원 정도의 순익을 낼 것으로 보인다. 한국(6.04%)도 순익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유럽 재정위기 확산으로 내년 전망이 불투명하고 부동산 경기침체가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6월 말 기준 저축은행 등 비은행권의 가계대출 비중은 전체의 51.7%로 사상 최대치다. 신용등급 5등급 이하 계층의 총 대출 중 비은행권 비중은 2009년 말 53%에서 6월 말 56%로 높아졌다. 금융권에서는 이 가운데 상당수가 다중 채무자일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부터 개인신용대출을 크게 늘린 저축은행들 입장에서는 부담이다. 추가 부실 불씨가 여전하다는 얘기다. 회색지대라는 말처럼 경영 상태가 아직도 회색 그늘 아래 놓여 있다는 뜻이다. ◇퇴출 재연되나=업계 관계자들은 내년까지는 회색지대 저축은행들도 버틸 수 있겠지만 문제는 그 이후라고 전망하고 있다. 계속되는 충당금 부담과 증자 요구를 저축은행 대주주들이 감당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한 저축은행 대표는 "자산관리공사에 매각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내년 이후 가계대출 부실 문제가 더해지면 저축은행에 다시 한번 구조조정 바람이 불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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