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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3월 5일] 총체적 불신 시달리는 한국

이상돈(중앙대 교수·법학)

방송관계법안 처리에 대해 여야가 극적으로 합의를 이뤄내서 국회가 정상화되는가 했더니 금산분리법 등의 처리를 두고 여야가 또다시 대치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러다가 방송관계법에 관해 이룬 합의마저 이행되지 못하고 정국이 끝없는 대치국면을 가지 않을까 걱정된다. 이를 두고 국회가 제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어 국민의 불신을 사고 있다고 비난하기도 한다. 그러나 오늘날 불신 받고 있는 것은 국회만이 아니다. 행정부도 불신 받고 있고 사법부도 그러하며 정부의 ‘제4부’라는 언론도 그러하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총체적 불신에 시달리고 있는 셈이다. '개혁' 구호도믿지못하는국민
행정부가 불신 받는 것은 어느 면 당연하다. 돌이켜보면 김영삼 대통령 이래 모든 대통령이 “정부가 바로 문제”라는 식의 ‘정부 불신’과 ‘개혁’을 내세우고 당선됐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들부터가 ‘정부 불신’을 내세우고 “정부를 개혁하겠다”면서 대통령이 됐지만 나아지는 면이 없었던 것이 민주화 이후 우리나라 정치의 현실이다. 국민들은 정부를 믿지 않게 됐을 뿐더러 정부를 뜯어고치겠다는 정치인도 믿지 않게 됐다. 노회한 정치인인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은 그래도 국회를 존중했다. 하지만 자신을 제도권 밖의 인물로 규정한 노무현 대통령은 국회 같은 제도권 정치보다는 국민과 직접 소통하는 정치를 더 좋아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이 같은 시도는 얼마간 효과를 발휘하기도 했다. 하지만 매사에 제도권을 ‘불의의 집단’으로 몰아세우는 식의 독특한 정치는 강력한 역풍을 맞고 말았다. 이런 과정에서 대통령 자신이 희화화돼서 대통령이라는 권위 자체가 실추되고 말았다. 자신이 성공한 기업인임을 내세우는 이명박 대통령은 관료사회와 기성 정치에 대한 불신이 뿌리깊음을 숨기지 않고 있다. 관료사회와 기성 정치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선언을 해놓고 그들의 지원을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관료사회와 기성 정치에 대한 불신을 선포해놓아서 그들의 지원을 얻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기댈 곳은 국민밖에 없다. 하지만 오만에 사로잡힌 청와대와 측근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했고 뒤늦게 그것을 알게 됐을 때 열차는 이미 멀리 떠나버리고만 상태였다. 정부와 정치가 총체적 불신에 시달리고 있다면 그것을 불식하고 국민들을 한데 묶어 국론을 이끌어갈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것은 바로 언론이다. 언론이 여론을 대변할 수 있다면 언론은 분열된 정치와 사회를 봉합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라면 우선 언론 자체가 객관적이고 중립적이어야 하며 적어도 대다수 국민의 의견을 반영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언론은 그런 신뢰를 이미 상실한 것으로 보인다. 국민들은 이제 신문과 방송을 파당 정치의 연장으로 보고 있다. 정치가 분열됐듯이 언론도 분열돼 있음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고 사정이 이러하니 언론이 여론을 반영해서 불신과 대립을 치유한다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정부와 정치에 대한 불신은 우리나라에 특유한 현상은 아니다. 정치 지도자가 국민들의 전폭적인 신뢰를 얻고 있는 나라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불신의 정도가 심하다는 데 문제가 있다. 언론이 분열된 사회 봉합해야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것이다. 정보의 유통과 생산이 자유로워지고 생활수준과 교육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국민들이 정부에 비판적 시각을 갖게 된 측면도 있을 것이다. 국민들의 성향과 욕구는 다양해졌음에도 정치는 구태의연한 제로섬 게임에 머물고 있는 것도 불신을 조장하는 데 일익을 담당했을 것이다. 국민은 너무나 많은 것을 기대하고 정부는 너무나 많은 것을 약속해서 모두를 불행하게 만들고 있는 측면도 있다. 국민은 21세기라는 ‘포스트모던’에 들어와 있지만 정부와 정치는 기껏해야 20세기의 ‘모던’에 머물고 있어서 이런 현상이 심화되고 있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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