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들어 처음 열린 동반성장위원회 전체회의가 연말에 이어 파행으로 진행됐다. 전체 25명 중 9명의 대기업 측 위원은 회의에 참석하지 않아 2회 연속 반쪽 회의가 돼버렸다. 예정시간을 훌쩍 넘겨 3시간 가까이 회의가 진행됐음에도 안건으로 상정된 이익공유제 도입 및 데스크톱PC 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 모두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과 이익공유제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대ㆍ중소기업 간 갈등이 심화됨에 따라 동반위의 정체성마저 훼손돼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은 17일 회의를 마친 뒤 브리핑을 갖고 "사회적 합의라는 동반성장위원회의 가치에 따라 다음달 2일 전체회의를 열어 최종적으로 이익공유제 도입을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실상 다음 회의에서는 안건 통과를 강행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다. 이익공유제는 대기업과 협력기업이 함께 추진한 협력사업의 최종 결과물인 대기업의 이익(또는 손실)을 배분하는 것으로 동반위는 이를 실행하는 기업에 동반성장지수 평가시 가점을 주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대기업과 동반위 사이의 간극이 너무도 커 최종 결정 시한으로 못 박은 2월2일까지 합의를 이끌어내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인다는 게 중론이다. 특히 접점을 찾으려는 실마리조차 아직 보이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동반위는 지난달 회의가 무산된 후 대기업과 중소기업 대표, 공익위원 등으로 구성된 소위원회를 구성해 합의를 도출하려 했으나 대기업 측에서 대표자를 추천하지 않아 이마저도 무산됐다. 결국 갈등이 더욱 증폭될 것임은 불 보듯 뻔한 상황이다.
대기업 측은 이익공유제가 실무위원회에서 충분한 논의를 통해 합의를 거친 사안이 아니기 때문에 전체회의에 안건을 상정한 자체가 동반위의 일방적인 결정이라는 입장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강제가 아닌 자율이라고 하지만 일단 도입이 결정되면 기업에는 강제에 가까운 압박이 가해질 게 뻔해 신중하고 충분한 논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정 위원장은 대기업에 연일 날카로운 비판의 칼날을 세웠다. 이날 브리핑에서도 그는 "대기업들이 수개월간 논의과정에서 보여준 태도는 동반성장 파트너로서 책임감 있는 모습이 아니며 스스로 역사적 소임을 다하고 경제개혁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길을 선택한 것"이라고 힐책했다. 특히 정 위원장은 이 발언을 꼭 기사화시켜달라는 듯 또박또박 다시 읽어주는 친절함(?)까지 보였다. 그는 지난해 12월 전체회의에서도 "대기업 총수의 사회적 책임과 희생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정권 말로 접어드는 현 시점에서 양측이 거리를 좁히려는 노력이 수반되지 않을 경우 동반위 자체가 침몰할 것이라는 극단적인 전망을 내놓기까지 한다. 이익공유제 논란을 계기로 한 거듭된 파행으로 향후 중기적합업종 선정, 대기업 동반성장지수 평가 등 남은 과제의 추진 동력이 급격히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다. 동반위 자체도 형식은 자율기구이지만 현실은 규제기관화 돼버렸다.
이와 함께 사퇴 논란 등 지난해부터 이어졌던 정 위원장의 '몽니'를 이제 접어야 할 필요성이 크다는 의견도 나온다. 대기업의 한 관계자는 "동반위 자체가 정 위원장에 우호적인 인물들로 구성돼 있어 위원장 의도대로 흘러가는 구조를 타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기업이 적극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검토 노력조차 하지 않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중소업계 관계자는 "대기업이 동반성장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한 만큼 당장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 있더라도 최소한의 성의는 보여야 하지 않겠냐"고 지적했다.
익명의 한 경제전문가는 "동반위의 파행이 반복되면서 동반성장은 결국 구호에만 그칠 우려가 높아졌다"면서 "정 위원장 개인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동반위의 정체성도 되돌아봐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