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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산책] 아름다운 배우 장민호

김의숙<파임커뮤니케이션즈 대표이사>

지난 2005년 6월16일 늦은 저녁 9시30분 평양 봉화예술극장의 무대 위에 27명의 배우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이날의 공연을 위해 무대 위의 배우들과 무대 밖의 배후들이 보냈던 지난 일년 동안의 일들이 스크린을 지나가는 영상처럼 겹쳐지면서 1층 객석에 서 있던 나도 함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공연장을 가득 메운 남북과 해외동포를 대표하는 남북공동선언 5주년 민족통일대축전의 대표단과 평양 시민들은 두시간 동안을 숨죽여 관람하던 가극 ‘금강’이 끝나고 무대 인사를 하는 배우들에게 꽃을 던지며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커튼콜의 마지막은 동학농민들의 정신적인 지주인 ‘아소’ 노인을 분한 장민호 선생님. 노배우가 무대 저 깊은 곳에서 팔을 휘휘 저으며 활기차게 뛰어나오자 모두가 환호했다. 자리에 앉아 있는 관객은 찾을 수 없었다. 공연을 총괄하며 마음을 졸였던 나는 자동적으로 손을 흔들며 소리를 질렀으나 소리 대신에 눈에서 눈물이 먼저 쏟아졌다. 극중의 정신적인 지주뿐만 아니라 가극 ‘금강’에 참여했던 모든 이들의 진정한 어른이셨기 때문이다. 공연을 만들고 관객들을 만나는 일을 한 지 십수년 동안 많은 배우와 스태프들과 감동을 함께 나눌 기회가 있었지만 이날의 감동의 중심에는 바로 배우 장민호가 있었다. 서울로 유학 온 후 60년 동안 고향을 밟지 못했던 그가 그리도 가고 싶었던 고향에서 공연을 하기 위해 얼마나 애태웠으며 밤잠 이루지 못한 날이 얼마나 많은지 잘 알고 있기에 그 마음은 더욱더했다. 모두가 고대했던 공연 날 아침, 공연장으로 향하기 위해 배우들이 모두 오른 버스에는 전날 늦게까지 공연 준비를 한 배우들의 지친 모습과 긴장감으로 무거운 침묵이 가득 차 있었다. 출발 직전 무리한 일정과 긴장 탓에 젊은 배우 두명이 복통을 일으켜 도저히 극장을 갈 수 없는 상황이 됐을 때 나는 무심코 선생님의 얼굴을 봤다. 그의 얼굴색이 복통을 호소하는 배우들보다 더 하얗게 질려 있었다. 북측 의사의 도움으로 겨우 사태는 수습됐고 리허설 전에 배우들과 함께 공연장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그를 찾아뵈었을 때 그는 얼굴에 가득했던 걱정을 지우시며 젊은 배우들을 격려해줬다. 공연을 마친 후 선생님께서 밝은 얼굴로 젊은 배우들에게 “오늘 공연 정말 좋았소. 다들 수고 했어요”라고 말할 때 그 송구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공연 이후 만나는 이들에게 “난 정말 행복하다. 내 인생의 최고의 날이다”며 아침에 버스 안에서 얼마나 아득하고 걱정하고 긴장했는지를 거듭 반복하며 후배들의 투혼을 칭찬했다. 평생 무대 위에서 들려주는 명료한 음성에다 밝음을 더해 “김선생, 수고 많아요”(그는 손자벌인 아득한 후배에게도 ‘~야’라는 호칭 대신 ‘선생’ ‘~군’이라 부르신다) 하며 술잔에 술을 채워주던 따뜻한 격려, 후배 배우나 스태프들의 도움을 한사코 마다하고 막이 오르기 전까지 모든 것을 스스로 챙기는 모습, 그리고 긴장된 순간순간 던지는 그 빛나는 농담들. 나는 한 가지 업을 60년 넘게 하고 있는 이 노배우에게서 진정한 전문가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자신이 걸어가고 있는 길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어른을 만나게 된 나는 또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 내가 지난 일년 동안 선생님이 보여준 모습을 눈과 가슴에 새겨 내게 찾아오는 어려운 순간들마다 꺼내본다면 나의 인생도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내가 공공연하게 배우 장민호를 삶의 모델로 삼았음을 알린 후에 헛된 짓으로 선생님께 누가 되지 않도록 살아가리라 다짐해본다. 이 아름다운 분이 오랫동안 건강하시기를, 많은 사람들이 이분의 아름다움에 행복해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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