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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모호한 현실에 합리적 선택은 없다"

올해 노벨경제학 수상 카너먼, 기존 경제이론 '뒤집기' ■ 불확실한 상황에서의 판단 (대니얼 카너먼 외 지음/아카넷 펴냄) "심리학과 경제학을 접목시킨 통합적인 연구성과와 불확실한 상황에서의 의사결정과정에 대한 연구를 높이 평가합니다." 스웨덴 왕립 과학원가 올해 노벨경제학상에 심리학자인 대니얼 카너먼(프린스턴대 교수)를 선정하면서 밝힌 논평이다 . 카너먼은 경제학자인 버넌 스미스(조지메이슨대 교수)와 함께 올해 노벨경제학상을 공동수상했다. 그는 합리주의에 매몰돼 화석화 된 경제학에 심리학적 상상력으로 생기를 불어넣었고, 세계 경제학계는 그 보답으로 심리학자에게 노벨경제학상을 선사한 셈이다. 그의 심리학에 입각한 '비합리적 판단이론'은 기성 경제학의 '합리적 판단이론'을 뒤집었다. 요약하자면, 미래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복잡한 의사결정 과정을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이 아예 없으므로 합리적인 판단 자체가 불가능하고, 주먹구구식 예측이나 반복적인 시행착오에 전적으로 의존해 앞날을 판단한다는 것이다. 카너먼은 동료 심리학자인 아모스 트버스키와 공동 연구와 실험을 통해 이 같은 가설을 이론화했다. 1973년의 '빈도와 확률을 판단하는데 있어서의 시행착오적 접근', 1979년의 '전망이론'이 바로 트버스키와 땀을 섞은 역작들이다. 특히 1973년의 논문의 경우 트버스키와 점심식사를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우연히 의기투합을 했다는 유명한 일화를 남기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국내에 출간된 '불확실한 상황에서의 판단'(아카넷 펴냄)이라는 800여쪽에 달하는 방대한 책은 카너먼의 이론을 종합한 책. 트버스키와 공동집필한 이 책은 불확실한 상황에서 결정 내리기에 관한 인지심리학에 관한 연구 결과 35편을 수록하고 있다. 저자들은 "선거의 결과, 피고의 유죄여부, 달러의 가치변화 등 불확실한 사건에 관한 신념은 종종 승산이나 주관적 확률과 같은 숫자 형태로 표현된다. 무엇이 그런 신념을 정하는가? 사람들은 불확실한 사건의 확률이나 불확실한 양의 값을 어떻게 평가하는가?"라는 질문으로 말문을 연다. 사람들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선다. 신입사원이라면 어떤 회사에 취직해야 하는지, 기업가라면 내년 투자규모를 어떻게 결정할지, 유권자라면 어떤 후보자에게 투표를 해야할지 등. 이러한 기로에서 누구나 올바르고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기를 원하지만, 카너먼에 따르면 그것은 기대하기 어렵다. 정보의 제한, 환경의 가변성, 인간의 인지적 특성 때문에 불확실성이 증대되므로 합리적 판단은 요원하다는 것이다. 합리적 판단이 아니라면 무엇인가? 카너먼은 이처럼 불확실성으로 가득찬 세상에서 사람들은 '적당히, 주먹구구식으로' 판단을 내린다고 말한다. 다소 싱거운 이 결론은 '추단법(heuristics)'으로 집약된다. 사람들은 확률의 평가나 값의 예언과 같은 복잡한 과제를 매우 단순한 과정으로 환원시키는 몇 가지 추단 원리(편향)에 의존한다는 이론이다. 책에 나오는 편향과 추단법의 흥미로운 예들이다. 우선 동전을 던지는 경우, 사람들은 같은 경우의 수인데도 '앞뒤앞뒤앞뒤'로 나올 확률이 '앞앞뒤앞뒤뒤'로 나올 확률보다 높다고 믿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대표성 추단법'이다. 또 어떤 부부에게 "집안 일을 얼마나 하느냐"고 물으면, 대체로 자신이 한 일이 주로 생각나고, 배우자의 기여도는 별로 떠오르지 않기 마련인데, 이는 '가용성 추단법'에 해당된다. 쉽게 말하면 불확실한 상황에서의 판단근거가 되는 추단법이란 일종의 편향이나 착각, 또는 오류들이다. 카너먼의 이론이 지닌 가치는 바로 사람들이 합리적으로 판단했다고 믿는 수많은 일들이, 따지고 보면 잘못된 편향과 착각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정부의 그릇된 정책, 기업의 엉뚱한 의사결정, 개인의 어긋난 삶의 행로를 바르게 되돌리는 원동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성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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