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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원짜리 서랍장은 없나요? 이케아보다 엄청 비싸네요."
19일 경기도 광명시 광명가구거리에 위치한 영세가구업체를 찾은 한 여성 고객은 이처럼 비싸다는 말만 남기고 매장을 나갔다. 김정한(가명) 대표는 "하루에도 저런 손님이 여러 명"이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길 건너편 생활용품 매장은 이미 가게를 내놓은 상태다. 업체 대표는 "손님이 가장 많아야 할 오후 시간인데도 발길이 아예 끊겼다"며 "이 정도면 인근 경기도 지역은 다 (장사가) 안 된다고 봐야 한다"고 푸념했다.
이케아 광명점이 개장한 지 약 한 달. 교통대란·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 발의 등 숱한 이슈를 남겼지만 이날 이케아를 찾은 사람들은 쇼룸을 둘러보며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었다. 저렴한 가격으로 미트볼, 김치볶음밥 등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레스토랑은 줄이 길게 늘어져 30분 이상은 기다려야 입장이 가능한 정도다. 아이들을 데리고 이케아를 찾은 주부 김지숙씨는 "쇼룸도 둘러보고 아이들과 점심도 먹을 겸 이케아를 찾았다"며 "생각했던 것보다 매장이 크고 판매하는 물건이 다양해 하루 종일 둘러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케아 광명점은 연 면적만 13만㎡가 넘는 세계 최대 규모다. 매장 내부에는 65개의 쇼룸이 구성돼 있고, 8,600여개의 제품이 진열돼있다. 하루 평균 4만명이 찾는 이곳은 개장 이후 약100만명이 다녀갔다.
하지만 이케아 광명점에서 승용차로 약 10㎞ 떨어진 광명가구거리는 한산하다 못해 적막감마저 감돌고 있다. 지난해 이맘때는 새 학기를 앞두고 학생용 가구를 사려는 손님들로 북적거렸지만, 특수는 사라진 지 오래다. B업체 대표는 "이맘때면 하루에 10개씩 책상을 팔았지만 지금은 한 개 팔기도 힘들다"며 "다섯 명이던 직원들도 하나 둘씩 내보내고 혼자 장사를 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예약주문을 해놓은 고객들이 이케아 개장 이후 주문 취소 전화를 해온 경우도 흔하다. 그는 "가구 품질이나 무료 배송·설치·애프터서비스 등에 드는 비용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이케아가 싸다고 예약을 취소하거나 매장을 방문해서도 이케아와 단순 비교하는 손님들이 많다"며 "비용 절감을 위해 물류창고도 없애고 주변 업체끼리 공동 용달·사다리차를 이용하면서 살 길을 모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광명가구거리에서 아예 문을 닫은 가게는 이미 4곳에 달한다. 모두 이케아 광명점 개장 전후를 기점으로 폐업한 곳들이다. 나머지 상점도 권리금도 받지 못한 채 조용히 나가거나, 가구업을 접고 다른 업종으로 전환을 꾀하는 곳이 많다. 인근 조명업체와 생활용품 가게도 사정은 마찬가지. 생활용품 업체 사장은 "이케아에서 판매하는 생활용품 비중이 60%나 된다고 하더라"며 "인근 주민들조차 발길을 뚝 끊어 주말에는 아예 거리에 인적이 없다"고 말했다.
반면 한샘 등 국내 대형 가구업체들은 호재를 맞았다며 느긋한 표정이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한샘은 올해 1조3,000억원의 매출을 달성할 것으로 관측된다. 현대리바트 역시 현대백화점의 유통망과 생활용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 증가 등이 시너지를 내며 지난해 6,653억원의 매출을 기록, 상승세를 달리고 있다. 지난해 9월 광명가구거리에 4층 규모로 자리 잡은 한샘 인테리어 대형 대리점은 인근 영세가구업체와는 달리 손님들로 북적였다. 매장 관계자는 "이케아 국내 진출 이후 오히려 가구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늘어난 것 같다"며 "생활용품에 대한 니즈도 점점 늘어 1층 생활용품관의 인기가 높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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