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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10월 14일] 악비와 이순신

중국인에게는 충절과 신의의 대명사로 통하는 남송시대 최고의 명장 악비(岳飛)가 있다. 당시 금나라의 침략으로 송나라가 양자강 이남으로 쫓겨가자 끝까지 이민족의 침략에 맞서 싸우자는 주전론을 펼치며 금나라를 연전 연퇴시키는 맹활약을 한 장수다. 하지만 주화론의 선봉에서 타협을 주장하며 악비를 모함해 죽음에 이르게 한 진회(秦檜)는 20년간 재상 자리를 꿰차고 부귀영화를 누린다. 오랑캐에 맞서 나라를 위해 초개같이 목숨을 버린 것이나 억울하게 누명을 쓴 것이나 우리나라의 이순신 장군을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중국 드라마나 영화는 물론이고 교과서에서도 악비는 한족의 자부심과 긍지를 상징하는 최고의 영웅으로 묘사돼왔다. 하지만 최근 몇 년부터는 악비를 TV에서 찾기 힘들더니 교과서에서도 더 이상 구국의 인물로 그리지 않거나 그 역사적 비중이 현저히 줄어들고 있다. 지난 2000년대 중반부터 본격화한 중국 정부의 역사 새로 짜기에 악비는 적합하지 않은 인물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가 오랑캐라고 부르던 금나라 등 이민족 국가를 자국 역사에 편입시키는 작업이 한창이다. 이른바 통일적 다민족 국가론이다. 최근 가장 시급한 문제로 중국이 골머리를 앓고 있는 티베트, 신장 위구르 등 소수민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56개 민족이 모두 하나라는 개념이 필요한 것이다. 사실 티베트, 신장 등 천연자원이 풍부한 중국의 깊숙한 서부 지역은 대부분 청나라 건륭제 때 편입시킨 것이니 이들 영토 소유의 역사적 명분을 위해서 다민족 국가론이 필요했던 것이다. 금나라의 뿌리도 청나라처럼 여진족이니 악비가 중국인에게 부각될수록 중국 정부 입장에서는 부담스럽다. 고구려를 중국 역사에 편입시키는 '동북공정'도 이 같은 새판 짜기의 일환이다. 이와 관련, 기자는 1일 천안문 광장에서 열린 '중국 건국 60주년 기념' 축제에 참석했다가 움찔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날의 축제를 관통하는 테마는 한족ㆍ만주족 등 56개 민족이 모두 하나라는 것이었다. 천안문 광장에 각 민족의 이름이 쓰여 있는 56개 기둥이 세워진 가운데 축제가 시작되자마자 먼저 위구르족과 티베트 전통의상을 차려 입은 가수가 차례대로 각자 고유의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는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가수가 우리의 노래 '도라지'를 정겹게 불렀고 이어 중국어로 번역돼 노래가 흘러나왔다. 최근 소수민족 분쟁의 당사자인 위구르와 티베트를 제일 먼저 내세운 것이나 이어 조선족을 부각시킨 것이나 치밀하게 짜여진 각본이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지난달 25일 중국은 만리장성의 동쪽 끝이 기존의 산하이관에서 2500㎞ 더 연장된 압록강변의 단둥이라는 '장정 선언'을 공식 발표했다. 중국의 집요하고 억지스럽기까지 한 역사 새로 짜기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소름 끼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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