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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영화 되살리는 江景

한때 서해안 최대의 어염(魚鹽) 집산지로서 `금강 수운(水運)의 꽃`이요, `백화(百貨)의 함토항`(含吐港)이라고 불리던 충남 강경이 지역경제 활성화를 통해 잃어버린 옛 영화를 되찾고자 몸부림치고 있다. 지난 1997년부터 주민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강경되살리기운동이 전통적 명성의 젓갈시장 활성화를 계기로 가시적 성과를 보이게 된 것이다. 강경 주민들의 옛 영화 되살리기는 올해로 7회째를 맞는 강경맛갈젓축제가 그 견인차 구실을 하고 있으며, 여기에 기능대학 유치와 근대건축물 보존운동도 큰 보탬이 되고 있다. 이에 따라 강경의 명성이 한창 때인 1930년대에는 유동인구까지 포함하여 10만명에 이르다가 최근 1만4,000명까지 떨어졌던 인구가 2001년 말부터는 증가세로 반전, 갈수록 도시로 사람들이 빠져나가는 다른 농어촌과는 반대로 인구가 오히려 늘어나고 일손이 모자라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강경은 일찍부터 금강 하류에 발달한 수운의 중심지로서 남쪽의 대구, 북쪽의 평양과 더불어 조선 3대 시장으로 손꼽히며 번창하던 상업도시였다. 강경이 논산군청 소재지인 논산보다도 전기와 수도가 먼저 들어오고 7년 반이나 앞선 1931년 4월 1일에 읍으로 승격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1905년 경부선이 개통되기 전까지만 해도 군산항에 입하된 물화의 80%가 강경장을 통해 팔려나감으로써 강경은 서해안 물화의 집산지요, 중개교역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부여ㆍ공주는 물론, 청주ㆍ전주에서도 어염을 구하고자 사람들이 강경으로 몰려들어 전성기의 이곳 상권은 충남ㆍ북과 전북, 경기 남부까지 뻗혔다. 국운이 기울던 대한제국 광무 3년(1899)에 군산이 부산ㆍ원산ㆍ제물포ㆍ경흥ㆍ목포ㆍ진남포에 이어 일곱 번째로 개항되기 전까지는 강경이 금강 하구 최대의 문호요 장시(場市)였다. 강경은 조선조 중기부터 원산렇떻媛?더불어 손꼽히는 어염의 집산지였다. 조기를 비롯하여 서해 각 어장에서 잡히는 해산물의 최대 시장으로 명성을 떨쳤을 뿐만아니라, 일찍부터 중국에서 호염(胡鹽)을 수입하여 각종 어류를 가공하고 판매하던 중심지역할도 했다. 또한 강경은 쌀의 집산지이기도 하여 제주도에서 미역ㆍ고구마ㆍ좁쌀을 실은 배들도 대소 어선과 더불어 강경포구를 수시로 드나들었다. 구한말부터 이곳에 자리잡은 객주(客主)들은 수산물의 유통경로를 단시일에 장악하여 무려 100년에 걸쳐 이 지역의 상권을 쥐고흔들었다. 이들은 전국 각지의 상인들한테서 돈을 모아 출어자금을 대고, 잡아온 고기를 넘기면서 구전을 먹었다. 어선을 10여 척이나 부리는 객주도 있었고, 이런 사람은 수십여 수산물도매상과 거기에 딸린 수백여 뱃사람까지 마음대로 주물렀으므로 수산시장은 자연히 이들 객주를 중심으로 형성되고 발전했다. 또 당시 서해에선 고군산열도가 가장 큰 어장이었는데, 거기서 잡은 조기와 갈치 대부분이 강경포구로 들어왔고, 이 밖에 민어ㆍ홍어ㆍ전갱어ㆍ게 등도 거의가 강경을 통해 전국으로 팔려나가 `일원산 이강경`(一元山二江景)이란 말까지 생겨났다. 또한 강경은 인근 연산의 감럽允傷?중국산 비단도 이곳에서 거래되고, 이른바 박래품(舶來品)을 실은 무역선도 잇달아 드나들면서 수산시장럼齪苑쳄藥포목시장 할것없이 중부지방 최대규모의 장시를 이뤄 조선 3대시장의 하나로 꼽히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해마다 성어기인 3월부터 6월까지 4개월간 강경은 더욱 생기 넘치고 활기찬 저자를 이루었으니, 이는 육지의 파시(波市)와 다음아니었다. 강경의 노인들은 어물을 사려고 전국에서 몰려든 상인들로 여관은 날마다 만원사례를 불렀고, 불야성을 이룬 부둣가의 술집들은 거친 뱃사내와 간드러진 작부들의 노랫소리렛薦슨恬??밤마다 떠나갈 듯했다고 회고한다. 하지만 이제는 어느 거리 어느 집에서도 흥청거리는 기색이 뚝 끊긴지 오래다. 100여 색주가가 즐비했고 끊임없이 인력거가 오고가던 영화롭던 옛 시절은 썰물처럼 금강 줄기를 타고 역사의 바다로 흘러가버렸다. 강경의 상권이 쇠퇴한 것은 1899년 군산항 개항에 이어, 1905년 경부선, 1912년 군산선, 1914년 호남선의 개통으로 가속화됐다. 이에 따라 강경의 막강했던 상권은 여지없이 위축되어, `논산ㆍ연산은 강경 덕에 산다`던 말도 한갓 전설이 되어버렸다. 강경은 생선과 곡물의 교역도 성했지만 새우젓 등 젓갈류도 국내최대의 공급시장이었다. 희미한 옛 추억만 남은 강경의 영화를 이제 그 젓갈시장이 앞장서서 되살리기 시작한 것이다. 젓갈시장 확대와 더불어 강경되살리기의 발판으로 삼는 것이 기능대학 유치와 포구복원 등인데, 어쨌든 강경주민의 의욕적이며 진지한 재기 노력은 지역경제활성화의 모범적 성공사례라고 할 수 있다. <황원갑(소설가ㆍ한국풍류사연구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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