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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인화로 일군 도전·개척 60년] (2) 과감한 선택·결정

"남보다먼저"… 성공밑거름<br>故구회장 자본주의 받아들여 장사 시작<br>중앙시장에 포목점 열고 빠른 투자로 큰돈<br>47년 락희화학공업사 설립 허씨일가와 동행<br>외제 판치던 화장품시장 도전 LG 초석 다져

지난 47년 1월15일 출범한 후 LG그룹 60년 역사의 시발점이 된 옛 락희화학공업사의 전경.

◁ 고(故) 연암 구인회 회장이 지난31년 포목점 영업을 시작한 옛 ‘구인회 상점’의 상가터.

△ 락희화학이 첫야심작으로 선택한 락희크림.

△ 고(故) 연암 구인회 회장의 생가.

지수초등학교 상남관

진주시 대안동 중앙시장. 시장 개장 122년째를 자랑하는 이곳이 LG그룹의 시원(始原)인 ‘구인회 상점’을 시작한 곳이다. 백화점, 할인점 등 대형 유통체인들이 위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서부경남 상권의 중심으로 자리잡고 있다. 지난 5일 기자가 찾아간 ‘구인회 상점터’는 옛 건물의 흔적조차 없었다. 대신 옷 가게 두 곳이 나란히 자리를 하고 있었다. 돌아보면 76년이란 시간이 흘러 포목점이 캐주얼 의류 가게로 진화한 셈이다. 주변 상인에게 이 자리의 유래를 물었지만 잘 알지 못하는 눈치였다. LG그룹 창업주인 고(故) 연암 구인회 회장이 ‘구인회 상점’이란 간판을 내걸고 진주 중앙시장에서 포목점을 시작할 때가 1931년. 지금부터 76년전이다. 당시 사농공상의 위계가 엄연하던 시절 교리집안(연암의 할아버지가 홍문관 시독을 지냄)의 장손이 장사를 시작한다는 건 대단한 모험이었다. 특히 포목점 개업 이듬해 진주시내 전체가 물에 잠기는 대홍수가 발생해 구인회 상점도 커다란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출발치고는 영 개운치 않았지만 연암의 탁견이 빛을 발한 것이 바로 이 때였다. “홍수 뒤에 대풍년이 온다”며 오히려 포목들을 잔뜩 사들였던 구인회 상점은 이 결정으로 큰 돈을 쥐었다. 현대 경영의 시각으로 보자면 ‘경기를 미리 예측하고 과감하게 투자한 것’이 성공으로 이어진 셈이다. 연암은 단순히 돈 버는 데만 집착하지 않았다. 백산 안희제 선생을 통해 1만원의 독립운동자금을 건네는 등 나라잃은 민족의 청년으로서 해야 할 일을 실천했다. 일제의 감시 속에 죽음까지도 무릅쓴 연암의 기부는 해방 후 백범 김구 선생에 의해 세상에 드러났다. LG가 그룹 역사 60년의 시작으로 삼는 ‘락희화학공업사’가 출범한 것은 1947년1월5일(법인 등기를 끝마친 것은 3월25일). 해방후 진주에서 부산으로 사업터전을 옮기고, 무역업을 시작할 즈음 같은 마을(진주시 지수면 승내리)에 살던 만석꾼 허만정씨가 그 해 연암의 사업에 거액의 자금을 투자하며 당시 일본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아들 허준구(허창수 GS그룹 회장의 부친)씨를 합류시켰다. 이 때부터 이후 반세기 넘게 구씨, 허씨 양가의 아름다운 동행이 시작됐다. 동업자를 맞이한 연암이 첫 야심작으로 선택한 것이 화장품(락희크림). 당시 화장품은 외제가 판을 쳤었다. 연암은 그때 “손댔다 하면 틀림없이 고생할거다. 손해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남들이 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손대서 남 보다 먼저 달려가야 승리한다”며 허씨를 독려했다고 한다. 누구보다 빨리 자본주의를 받아들이고 사업을 일으킨 연암의 과감한 선택과 결정은 60년 LG의 단단한 뿌리였다. 부산 서대신동 락희화학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연암을 ‘파카 코트(미군 장교들의 상의) 사장님’이라고 불렀단다. 소매가 닳고 기름때가 잔뜩 낀 이 옷만 입어서 직원들에게 파카코트는 부진런하고 성실한 연암의 트레이드 마크. 1927년 문을 열었다는 진주 중앙시장 천황식당 주인의 억센 경상도 사투리가 쏟아져 나온다. “(지금 앉아있는 곳이) 80년 된 탁자 아입니꺼. 유명한 사람도 밥 묵고 했지예. 후딱 식사 하이소.” 혹시 연암이 이 탁자에서 바쁜 시간을 쪼개 비빔밥에 막걸리를 곁들이며 형제들과 더 큰 장사를 논의하지 않았을까라는 상상을 해본다. ● 구인회·이병철·조홍제 회장 등 배출 진주 ‘지수초등교’
한국 기업사 유산으로 자리매김
흔한 시골초등학교 풍경이다. 2층에 불과한 낮은 교사에 흙 먼지 날리는 운동장. 진주 남강 염창 나룻목에서 5리 길인 지수초등학교는 학생수도 규모도 크지 않은 시골학교다. 하지만 한국 기업사의 유산으로 손색이 없다. 기업역사기행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연암 구인회 회장과 삼성그룹 창업주인 호암 이병철 회장, 효성그룹 창업주인 만우 조홍제 회장이 바로 이곳 출신이다. 1명도 어려운 대기업 총수를 3명이나 배출한만큼 한국 기업사를 한몸에 품고 있는 학교임에 분명하다. 지수초등학교(당시명 지수보통학교)는 1921년 구씨와 허씨의 집성촌으로 부촌이었던 지수면 승산마을에 들어섰다. 연암은 학교 정문에서 200m남짓 거리에 떨어져 있는 생가에서 호암은 15m정도 떨어진 허씨가로 출가한 둘째 누이 집에서 다녔다. 구 회장의 지수보통학교 시절은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다. 밀려오는 신문명에 대한 호기심은 그를 2년 뒤 서울 유학길에 오르게 했다. 지수초등학교 교사 앞에는 소나무 두 그루가 있다. 원래는 세 회장이 3그루를 심었다고 한다. 3그루의 나무는 세월이 흐르며 몇해전까지 한 뿌리로 합쳐져 있었지만 이제는 한 그루가 죽고 두 그루만 남아 양쪽으로 가지를 뻗어나가고 있다. 13회 졸업생이면서 해방후 한국전까지 3년간 지수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던 구자경 LG 명예회장의 학교 사랑은 각별하다. 2000년 농촌학교 통폐합 정책으로 폐교 위기에 처했던 지수초등학교에 구 명예회장은 체육관을 설립하고 장학금을 전달하는 등 학교 살리기에 힘을 기울였다. 이를 기념해 학교측은 체육관의 이름을 구 명예회장의 호를 따 상남관이라고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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