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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 그후 10년] 강경식 전 부총리가 말하는 '4·17 안정화 시책'

수입 자유화·기업경쟁 촉진… 시장경제 전환 본격화<br>朴대통령 처음엔 완강한 반대 극심한 중복투자 확인후 승인


‘중화학공업의 대규모 투자가 경공업을 압박하고 있다’ 1979년 4월 17일에 발표된 ‘4.17 경제안정화 시책’은 그 당시 정부 육성 산업인 중화학 공업에 대해 이렇게 평가하면 투자조정의 청사진을 제시한다. 4.17 시책에 담긴 내용은 이것 뿐만이 아니다. 수입 자유화, 공산품 및 서비스요금 통제제도 개편, 정책자금제도 개선, 기업경쟁촉진, 국민의식구조 전환, 금융시스템 개혁 등 한마디로 한국경제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마스터 플랜이었다. 한국경제사에서 4.17 시책은 가장 파급력이 큰 정책으로 꼽히고 있다. 78~79년 당시 경제기획원 차관보로 4.17 시책을 주도 했던 강경식(사진) 전 부총리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4.17 시책이 만들어 지기 까지 과정을 생생하게 전했다. “78년에 대통령을 모시고 경제운용 방향을 보고할 때다. 그 때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15년 뒤 장기 전망에 대한 슬라이드를 준비했다. 내용을 보니까 우리 경제가 굉장히 잘 되는 것으로 돼 있다”. 이어지는 그의 설명. “뭔가 이상했다. 외신에서는 한국경제가 파산한다고 연일 보도가 나왔다. 오일 달러가 넘치면서 소비는 흥청망청 했고, 부동산 투기로 정신 없었다”며 “이렇게 정신이 시끄러운 데 정책기조를 바꾸지 않아도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지 의문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강 부총리는 보고가 끝난 즉시 이형구 당시 기획관에게 T/F를 구성할 것을 지시했다. 그 때 그는 “이제 까지 했던 정책은 완전히 잊어버려라. 우리 경제의 문제가 무엇인지 총 점검을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에 따라 이형구 기획관을 팀장으로 경제부처 실무자, 민ㆍ관 연구원 등 그 당시 내로라 하는 경제관료 및 전문가들이 호텔에 투숙하며 브레인스토밍 방식으로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권오규 현 경제부총리와 박병원 재정경제부 차관도 이 때 T/F 일원으로 활동했다. 강 전 부총리는 “작업 결과 우리경제가 공급부족 단계가 아닌 데 정책은 (공급)부족 경제를 운용하는 게 문제라는 데 의견이 모아 졌다”며 “수입도 자유화 하고, 농산물도 외국에서 들여오고, 금융도 자율화로 해야 된다. 이것이 결론이었다”고 말했다. 이 같은 1차 작업 결과는 1978년 3월 남덕우 부총리에게 보고된다. 그러나 당시 국회의원 선거를 앞둔 시점이어서 지침은 없었다. 우연의 기회일까. 부총리가 남덕우에서 신현학씨로 바뀌면서 4.17 시책은 외부에 서서히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신 부총리의 지원에 힘입어 당시 강경식 기획원 차관보는 보고서를 만들었다. 제목은 ‘80년대를 향한 새 전략’. 그 뒤 언론사 등과 접촉을 갖고 내용을 흘렸다. 그러자 당장 반대의 목소리가 나왔다. 무엇보다 박정희 대통령의 반대가 심했다. 강 전 부총리는 “(박 대통령은)기회 있을 때마다 불만을 표시했다. 가격통제를 없애자는 주장에 대해 ‘물가안정을 포기하자는 것이냐’라고 했고, 농촌 주택 규모를 줄이자는 주장에 대해서는 ‘나의 통치 철학’이라며 배수진까지 쳤다”고 회고했다. 대통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79년 연초 연두보고에서 내용을 보고하는 등 시책을 밀고 나갔다. 그러던 중 79년 3월 15일 청와대에서 대통령 주재로 기획원 관계자가 한명도 참석하지 않은 이상한 회의가 열렸다. “나중에 알고 보니 박 대통령이 기획원에서 주장하는 안정화 시책이 맞는 지 한국은행, KDI 등 전문가로부터 의견을 듣는 회의였다”며 “이를 테면 안정화 시책에 대한 일종의 궐석 재판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박 대통령이 진해 해군 사관학교 졸업식에 참석하고 창원공단에 방문했다. 그런데 이 공장에 가도 비슷한 장비, 저 공장에 가도 비슷한 장비 등. 우리가 지적했던 중복투자를 절감했다. 기획원에 절대로 비밀로 하고 회의를 진행했다”고 그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런 과정을 거친 후 3월말 경제기획원이 참석하는 회의가 다시 열렸다. 결국 박정희 대통령은 3월 30일 정부 정책으로 발표할 것을 지시했다. 이렇게 탄생한 ‘4ㆍ17 시책’은 신군부의 경제정책으로 이어졌다. 4ㆍ17 시책은 ‘고 정상 저 물가’를 현실화 시켰고, 개방ㆍ자유화 등을 표방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강경식 전 부총리는 “안정화 시책은 시장 경제로 전환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이다. 이것을 하지 않았으면 오늘의 경제는 없었다고 생각한다”며 “4.17 시책에서 제시한 각종 개혁 안을 제대로 추진했으면 97년과 같은 고통과 수모를 겪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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