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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이 살아야 내수가 산다] "보고 즐기는 쇼핑시대"… 소비·고용 확대 출발점은 대형 유통

<상>유통은 소비시장의 든든한 우산

대형마트 입점상품 90%가 중소기업 제품

해외시장 개척한 홈쇼핑은 수출통로 역할

초대형쇼핑몰 1곳, 최대 1만명 일자리 창출

되레 규제 풀어야 '소비선순환'에 내수 회복



내수 침체의 골이 날로 깊어지던 지난해 10월 서울 대형 백화점에서는 지난 몇 년간 좀처럼 볼 수 없었던 모습이 재연됐다. 100여명 이상의 고객들이 개점 1시간여 전부터 모여들어 문이 열리자마자 매장으로 뛰어가는 진풍경이 펼쳐진 것이다. 정부 주도의 유통 업계 할인행사인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에 소비자들이 거짓말처럼 다시 모였다. 한동안 백화점을 떠났던 50~60대 중년층이 '컴백'했고 남성 소비자들의 매출 비중도 사상 최초로 40%를 돌파했다. 지난해 10월 소매판매액도 전년 동월 대비 6.5% 오르며 0%대였던 7~8월과 대비를 이뤘다. 기대 이상의 효과에 정부는 행사의 연례화를 선언했다.

유통 업계의 기획전이 '소비절벽'을 극복하는 마중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대형 유통 업체들이 소비 선순환에 미치는 영향력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민간 소비가 주로 대형 유통 업체를 통해 이뤄지기에 이들 업체에서 소비자의 지갑이 열리면 수익이 늘어난 납품 업체들을 통해 2차, 3차 소비로 이어지는 등 전체 내수를 자극하는 긍정적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얘기다. 대형 유통 업체의 부활이 전체 내수 회복의 구심점 역할을 한다는 것은 이들이 중소기업과 대척점을 이루는 게 아니라 중기 납품 업체의 '플랫폼' 역할을 하며 동반관계를 형성하고 있다는 뜻도 된다. 대형 유통 업체를 찾는 소비자들이 늘어나고 판매가 확산될수록 납품 업체인 중기 매출도 늘어난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실제 대형마트의 중기 납품 업체 수만 4,600여개로 입점 상품의 90%가 중소기업 상품으로 채워진다. 백화점은 5,900여곳의 협력 업체 중 3,100여개가 중소기업이다. 매출의 70~80%를 차지하는 패션 브랜드 대부분을 중소기업에서 만든다. TV홈쇼핑의 중기 매출 비중도 55%로 특히 홈쇼핑들은 해외시장을 개척하면서 국내 중기의 수출 통로 역할도 맡고 있다.

전문가들 역시 소비 확대로 내수 회복을 이끌고자 한다면 출발점은 대형 유통 업체라고 입을 모은다. 연세대 경제학과 정진욱·최윤정 교수의 논문 '대형 소매점 영업제한의 경제적 효과'에 따르면 대형마트 매출은 영업제한으로 월평균 2,307억원(8.77%), 연간으로는 총 2조7,678억원이 감소한 것으로 추산됐다. 반면 전통시장이나 소형 슈퍼마켓으로의 소비 전환액은 월평균 448억~515억원으로 마트 매출 감소액의 19~22%에 그쳤다. 대형 유통 업체에 대한 규제 일변도에서 벗어나 긍정적 소비심리를 자극한다면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에서 확인한 것처럼 내수 회복을 위한 토대가 마련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반면 대형 업체 규제로 반사 효과가 기대된다는 전통시장의 중소상인은 갈수록 실체를 찾기 어려워지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전국 전통재래시장 중 영업 점포 수가 100개 미만인 소형 시장은 999개로 전체의 66.5%를 차지했다. 100~500개 미만 중소 시장은 29.8%(447개)였고 500~1,000개의 중대형 시장은 2.3%(34개), 1,000개 이상의 대형 시장은 1.5%(22개)에 그쳤다. 유통 업계에서 "입점 점포가 100여개에 그치는 전통시장을 살리고자 입점 중기업체 수가 4,000여개 이상인 대형마트를 죽인다"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시장경영진흥원에 따르면 지난 2005년 1,660개에 달했던 전통시장은 2013년 1,502개로 감소했다. 정부가 2002년부터 2013년까지 약 3조원을 전통시장에 쏟아부었지만 10%에 가까운 폐점을 막지 못했다. 전통시장 매출도 2005년 32조7,000억원에서 2013년 20조7,000억원으로 줄었다.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에서 대형화·차별화를 이루지 못한다면 지원금이 쏟아져도 고객의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이는 극심한 불황 속에서도 대형 유통 업계가 적극적 투자에 나서는 이유이기도 하다. 소비자들이 쇼핑을 넘어 다양한 볼거리와 재미를 즐기는 초대형 매장으로만 몰리면서 주요 유통 업체는 이를 반영해 수조원대의 투자를 지속하고 있다.

유통 업체의 매장이 늘어나고 규모가 커지면 고용 역시 증가한다. 실제 올해 오픈하는 초대형 복합쇼핑몰들은 개당 5,000~1만명의 인력 채용이 기대된다. 수출 산업이 위축되고 생산기지가 해외로 옮겨가는 가운데 유통 업계가 양산하는 건전한 일자리는 내수 회복을 위한 든든한 버팀목인 셈이다.

정재완 한남대 교수는 "업체가 커지면 가격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어 유통 시장이 발달할수록 대형화는 필수불가결"이라며 "대형 유통 업체에 씌워진 '주홍글씨'를 벗기고 정부규제도 대형 업체 내 고용 및 입점 업체의 역할과 위상, 여건 개선 등에 초점을 두는 형태로 변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희원기자 heewk@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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