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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홍색이 봄빛이다. 어른 키만큼 큰 캔버스에 넓게 색을 칠한 작가는 아크릴 물감이 마르기 전에 페인팅 나이프로 색을 지워냈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질서정연하게, 그러나 꽉 짜이지 않고 각자 나름의 호흡을 가진 점들은 음악의 스타카토처럼 발랄하다. 수양의 과정과도 같은 반복적 행위 중에도 조형성과 규칙성을 고려한 결과다. 아크릴은 빨리 마르는 터라 작업은 한 시간 내로 마무리해야 했다. 작가 조용익(82)은 1961년 제2회 파리 비엔날레, 1962년 '악튀엘전' 등에 참여하는 등 초창기 한국 현대추상회화 주요 전시를 이끌었고 한국미술협회 부이사장, 추계예술대 교수 등을 지냈다. 미술평론가 윤진섭은 "1974년 단색화로 전환한 조 화백은 박서보·정상화·하종현·윤형근·정창섭 등과 함께 활동한 '전기(前期) 단색화'의 작가 중 하나"라며 "지워야 비워지는 동양사상의 근본 철학이 고스란히 작품에 재현되고 있다"고 평했다. 건강 등의 이유로 활동이 뜸했던 작가의 8년 만의 개인전이 '지움의 비움'이라는 제목으로 성곡미술관에서 4월24일까지 열린다. /조상인기자 ccsi@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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