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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통해 세상읽기] 하해불택세류 고능취기심

최근 필리버스터 정국서 보듯 공동체는 항상 소수의견 존재

간언 받아들여 통일 이룬 秦처럼 합리적 반론 경청해야 통합 가능


최근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 필리버스터가 시민들의 많은 관심을 끌었다. 필리버스터는 법안의 통과와 저지를 두고 국회의장 단상 주위에서 극렬하게 대치하던 장면을 더 이상 연출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성공적인 실험이라고 할 수 있다. 또 테러방지법을 둘러싸고 찬성의 주장만이 아니라 반대의 주장이 공적으로 드러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됐다. 그 과정에서 필리버스터는 국민들로 하여금 테러방지법이 국가 안보만이 아니라 시민 개개인과 어떤 연관성을 갖는지 성찰하게 됐다.

우리는 공동체를 운영할 때 다수의 목소리만이 아니라 소수의 목소리를 어떻게 경청해야 하는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가 없다. 다수가 선이므로 소수의 주장은 들을 필요가 없는 것인지 다수가 선을 독점할 수 없으므로 소수의 합리적 주장에 주목해야 하는지 따져봐야 한다. 이와 관련해서 전국시대의 분열을 통일했던 진나라의 국정을 이끌었던 이사(李斯)의 '간축객령(諫逐客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진나라는 오늘날 산시성(陝西省)에 위치하므로 중국 전역에서 서쪽에 치우쳐 있다. 아울러 진나라는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낙후돼 있었기 때문에 전국시대 초기 통일을 주도할 후보에 들지도 못했다. 진나라는 이러한 약점을 만회하기 위해 전국의 사람을 상대로 인재를 구한다는 구현령(求賢令)을 발표했다. 사실 이 조치로 인해 전국의 인재들이 진나라로 몰려들었다. 이사도 초나라 사람으로 구현령에 희망을 걸고 진나라로 왔던 인재들 중의 한 명이었다. 진나라는 몰려든 인재를 적재적소에 활용해 통일대업을 이뤘다.

별안간 진나라는 구현령과 반대되는 조치를 취했다. 외국 출신의 인재들을 추방한다는 간축객령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발표는 당시 정국을 뒤흔들었던 간첩 사건에서 비롯됐다. 한나라의 정국(鄭國)은 토목 전문가로 진나라에 와서 저습지를 개간해 옥토를 만드는 국가 사업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국은 대규모 토목 공사를 벌여 진나라의 재정을 파탄 내려는 속셈을 가지고 있었다. 그 속셈이 발각되면서 진나라는 외국의 인재에 대해 간첩 혐의를 두고 추방령을 내렸던 것이다. 이사는 꿈을 포기하기 어려웠던지 추방령에 반대하는 편지를 진시황에게 보냈다. 외국 인재들이 낙후된 서쪽의 진나라로 와서 국가 발전에 크게 기여했던 사례를 열거했다. 진시황도 외국의 인재가 간첩 혐의를 받을 수 있지만 기여한 업적을 무시할 수 없었다.

나아가 이사는 진시황에게 태산이 왜 높고 바다가 더 깊은지 이유를 물었다. "태산이 작은 흙덩이를 가리지 않아 우뚝 크게 솟을 수 있고 바다가 작은 개천의 물을 마다하지 않아 깊을 수 있는 것이다(태산불양토양·泰山不讓土壤 고능성기대·故能成其大. 하해불택세류·河海不擇細流 고능취기심·故能就其深)." 여기서 이사는 진시황이 사람을 가리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또 그는 추방당한 인재들이 어디로 가겠는지 반문했다. 그들이 결국 진나라의 경쟁국으로 몰려간다면 "적에게 힘을 실어주고 도둑에 양식을 보내는" 역설적인 상황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진시황은 이사의 편지를 읽고 자신의 정책적 과실을 시인하고 인재 추방령을 철회했다.



이렇게 합리적인 주장이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진나라는 경쟁국에 비해 낙후된 상태에서도 통일대업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태산불양토양'에서 소수의 주장에 들어 있는 합리적 요소를 존중하는 통합의 가치를 읽어낼 수 있다.

/신정근 성균관대 유학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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