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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세 여자아이를 성추행해 유죄 판결을 받은 직원이라도 회사가 함부로 해고할 수 없다는 법원 판결이 또다시 나왔다. 성범죄를 엄단해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법원의 처벌 잣대가 너무 관대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서울고법 행정7부(윤성원 부장판사)는 현대자동차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성추행 직원 A씨의 해고를 인정해달라"며 낸 소송에서 1심과 같이 회사 측 패소로 판결했다고 4일 밝혔다. A씨는 2013년 8월 술에 취한 채 은행 지점 안에 앉아 있던 13세 여자아이에게 접근해 "같이 밥 먹자"며 허벅지를 쓰다듬었다. 그는 미성년자 강제추행죄로 재판에 넘겨져 그해 12월 벌금 700만원을 선고 받았다. 회사는 곧바로 A씨를 해고했다. 회사 취업 규칙에 '범법행위로 유죄 판결을 받은 직원은 해고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고 성범죄로 처벌 받은 근로자는 그동안 100% 해고해왔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A씨는 "회사 징계가 너무 과하다"며 중앙노동위원회에 구제 신청을 냈고 중노위가 부당 해고라며 A씨 손을 들어주자 현대차는 이에 반발해 소송을 냈다.
현대차는 재판에서 "성추행 사실이 알려지면 대외 신용도가 깎이는 등 업무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며 해고는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지난해 9월 "명예와 신용이 실추됐다는 주장이 구체적으로 증명되지 않았다"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회사의 다른 직원들조차 성추행이 있었는지 잘 알지 못하는 점 등을 이유로 들었다.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한 회사는 2심에서 '근로자에게 어떻게 징계할 것인지는 원칙적으로 회사의 재량에 맡겨져 있고 징계 처분이 사회 통념상 현저히 타당성을 잃은 경우에만 위법하다'는 대법원 판례를 강조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 역시 "성추행 처벌 전력이 있다고 무조건 고용관계를 끝내는 것은 사회통념상 지나치다"고 판단했다. 현대차 측은 이번 판결 결과와 관련해 "대법원 상고 여부는 현재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성추행으로 형사처벌까지 받은 만큼 이런 사실은 언제든 외부로 알려질 우려가 있고 성범죄에는 관용을 베풀어서는 안 된다는 인식도 확산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판결은 다소 관대한 결정으로 생각된다"고 지적했다. /박우인기자 wipark@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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