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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주요 은행 3곳이 무역보험공사를 상대로 "선박수출 관련 보험금 2,600억여원을 지급하라"며 낸 소송들에서 대법원이 사실상 무보의 손을 들어줬다. 이 판결로 시중은행이 무보와의 보험계약 체결을 꺼리게 돼 결과적으로 수출기업에 대한 금융지원이 위축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대법원 1부(주심 김소영 대법관)는 SC은행이 SLS조선(현 신아SB)의 '선수금환급보증(RG)'과 관련해 348억원의 보험금을 청구한 소송에서 "무보는 10억원 외에는 지급 의무가 없다"는 판결을 확정했다고 10일 밝혔다. 선금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은행의 잘못이 크다는 이유에서였다.
대법원은 앞서 지난 2014년 10월 우리은행이 보험금 1,472억원을 요구한 소송에서도 무보가 지급해야 할 돈을 10억원으로 제한했으며 지난해 10월 국민은행의 406억원 청구 소송에서도 35억원에 대해서만 지급의무를 인정했다. 1월 우리은행이 2차로 낸 소송에서는 청구액 387억원 전액을 무보가 물어야 한다는 취지로 파기환송했지만 SLS조선 관련 RG 소송 전체로 놓고 보면 무보의 판정승이다. 우리·KB·SC은행은 총 2,613억원을 요구했으나 442억원(16.9%)을 받는 데 그쳤다.
앞서 우리은행 등은 2008년 SLS조선이 선박 16척을 수출하는 과정에서 조선사와 RG 계약을 맺었다. 보통 선박을 수출할 때 발주회사는 일정한 선금(선수금)을 조선사에 주는데 나중에 문제가 생겨 계약이 파기되고 조선사가 선금도 갚지 못할 경우 은행이 책임지고 이를 내도록 RG 계약을 맺는다. 은행은 다시 무보와 수출보증보험 계약을 맺고 선금을 갚아야 할 상황이 생기면 무보로부터 보험금을 받기로 했다.
이후 SLS조선은 경영난으로 2009년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수주선박 16척 중 14척은 완성조차 못해 수출계약도 깨졌다. 은행들은 선금을 발주처에 갚은 뒤 무보에 보험금을 요구했으나 무보는 "은행이 선금을 무턱대고 조선사에 준 잘못이 있다"는 등의 이유로 2,600억원은 내주지 않았다. 은행이 선금을 1차 관리하며 그 돈이 배를 만드는 데 쓰일 것이 확실하다는 증명이 있을 때만 조선사에 주도록 특별약정을 맺었는데 이를 어겼다는 것이다.
은행들은 재판에서 "특별약정 규정 자체가 모호했고 실무자 간 전화통화 등에서는 무보가 엄격한 증명 없이도 선금을 지급할 수 있다는 식으로 말했다"는 점 등을 강조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특별약정이나 무보 직원의 설명이 엄격한 증명 없이 선금을 지급하도록 했다고 볼 만한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번 판결에 대해 "은행도 SLS조선의 워크아웃을 예상하지 못했고 피해자라는 측면에서 법원의 판결은 다소 아쉬운 점이 있다"고 꼬집었다. /서민준기자 morandol@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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