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공항을 출발해 여수국가산업단지를 가로질러 차로 20여분을 달리면 여수와 광양을 잇는 주탑 높이가 270m에 달하는 이순신대교가 웅장한 모습을 드러낸다. 광양 방향으로 이순신대교를 건너며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멀리 나란히 서 있는 5개의 거대한 구조물이 한눈에 들어온다. 포스코 광양제철소의 5개 고로다. 이 가운데 가장 남쪽에 위치한 5고로는 3개월여의 개수 공사를 마치고 지난달 7일 재가동에 들어갔다. 첫 가동에 들어간 지난 2000년부터 15년 넘게 총 5,000만톤의 쇳물을 뽑아내고 ‘리모델링’을 한 것이다.
5고로가 쇳물을 다시 뽑아내며 제2의 생애를 시작한 지 한 달이 갓 지난 8일 광양제철소를 찾았다. 5고로는 최근 개수 작업을 마친 ‘새내기’ 고로답지 않게 진한 주황색 쇳물을 쉴 새 없이 뽑아내기에 한창이었다. 지상과 고로 최상단부를 사선으로 연결하는 100m가 넘는 길이의 컨베이어 벨트도 쇳물의 원재료가 되는 소결광(철광석 덩어리)과 코크스(석탄 덩어리)를 고로 꼭대기로 부지런히 실어나르고 있었다. 24시간 쉬지 않고 쇳물을 생산하는 5고로는 개보수 작업을 통해 용량이 3,950㎥에서 5,500㎥로 늘었다. 전 세계에 5,500㎥ 이상의 초대형 고로는 11개뿐이다.
거대한 열풍로(爐)를 통해 들어오는 뜨거운 바람은 고로 하단을 일정한 간격을 두고 빙 둘러싸고 있는 42개의 풍구를 통해 고로로 들어갔다. 풍구를 통해 고로 내부로 유입되는 1,200~1,300도의 열풍은 원재료를 녹여 쇳물을 만들어내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5고로는 개수 작업을 거치면서 풍구가 35개에서 42개로 늘었다. 고병훈 제선부 매니저는 “직경 125㎝짜리 풍구 42개 중 하나라도 문제가 생기면 5,500㎥ 용량의 고로는 가동을 멈춰야 한다”고 말했다. 고로가 한번 가동을 멈추면 6,000억원가량의 손실이 발생한다.
5고로는 개보수를 통해 단순히 덩치(생산량)만 키운 게 아니다. 5고로가 쇳물 1톤을 뽑을 때 필요한 코크스의 양은 324㎏/T-P로, 1고로의 310㎏/T-P보다는 많지만 비슷한 규모의 다른 나라 고로 평균인 332㎏/T-P에 비하면 우수하다. 자동차로 따지면 동급 차종과 비교했을 때 연비가 그만큼 좋다는 의미다. 냉각 장치도 고로 내 부분별로 세분화해 고로 자체의 수명을 연장시켰다. 불필요한 미세 입자를 걸러내 집진 효율을 높이기 위해 고로 내부에는 회오리 모양으로 된 관을 넣었다. 그 결과 집진 효율은 30% 이상 개선됐다.
이렇게 5고로 제선공정(쇳물을 뽑아내는 공정)을 거쳐 나온 쇳물은 3~4m 거리에서 직접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열기를 느끼게 했다. 흐르는 쇳물은 곧바로 어뢰차로 불리는 운송 열차인 토페도카에 옮겨졌다. 광양제철소에는 총 108개의 토페도카가 철로 위에서 무인시스템으로 조종된다. 보온병 역할을 하는 토페도카에 담긴 쇳물은 액체 상태로 제강공정(쇳물에서 불순물을 제거하는 공정)으로 옮겨진다. 인(P)이나 유황(S) 같은 불순물을 제거해 진정한 철(용강)로 거듭나기 위한 단계다.
불순물이 제거된 쇳물이 일정한 크기의 슬라브로 제작돼 열연 공정을 거치는 열연 공장은 장관이다. 주황색의 직사각형 형태를 갖춘 슬라브가 약 1㎞에 이르는 라인을 따라 앞뒤로 움직이면서 길이와 폭이 조정됐다. 이렇게 만들어진 열연 제품은 마지막 단계에 이르러 코일 형태로 돌돌 감겨 옮겨졌다. 완성된 열연 코일 하나 무게는 최대 35톤으로 가격은 최근 시세(톤당 60만~70만원)로 치면 2,000만원가량 된다. 포스코 관계자는 “열연 제품은 100% 고객 요구 사항을 반영해 주문 제작 방식으로 생산이 이뤄진다”고 말했다.
/광양=한재영기자 jyha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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