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 1962년 외환시장 개설 이후 50여년 만에 처음으로 외환시장 개입 내역을 공개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미국 재무부가 막대한 경상흑자, 대미 무역흑자 등을 이유로 한국의 외환시장 조작을 의심하는 데 대해 시장 운영의 투명성을 크게 높여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21일 복수의 외환당국 관계자는 “외환시장 개입 내역을 일정한 시차를 두고 공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개입 내역 공개는 2000년대 중반부터 필요성이 제기됐다. 당국이 철저히 비밀에 부치면서 시장 개입으로 손실이 나도 국민은 알 길이 없었다. 정책의 책임성과 안정성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정부는 “중장기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히면서도 “환투기 세력 공격의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며 실행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최근 국제사회에서 우리 외환정책에 대한 압박이 높아지며 분위기가 달라졌다. 국제통화기금(IMF)은 8월26일 발표한 ‘한국경제 보고서’에서 “외환시장 개입을 시장이 무질서한 상황으로 제한하고 개입 내역을 적당한 시차를 둬 공개할 것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IMF가 내역을 공개하라고 명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미 재무부도 4월 반기 환율 보고서에서 한국을 ‘환율조작국’ 전 단계 격인 ‘관찰 대상국’으로 지정하며 “외환시장 개입의 투명성을 높이기를 권장한다”고 했다.
신흥국을 포함해 다수 국가들이 시장 개입 내역을 공개하는 것도 우리 외환당국이 전향적 자세를 보이는 배경이다. 브라질·러시아·인도 등이 공표하고 있으며 호주·뉴질랜드 등 우리와 경제 체격이 비슷한 나라들도 공개한다. 미국·캐나다·영국 등 대부분의 선진국도 대외에 알리며 일본은 2000년 이후 공개해왔다. 다만 멕시코는 최근 환투기 세력의 공격을 방어할 목적으로 비공개로 전환했다. 아울러 우리는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국지수 편입을 추진하고 있는데 개입 내역 공개는 시장 투명성을 높여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외환당국이 실제 시장에 개입하는 물량은 얼마 되지 않지만 미국은 막대한 대미 무역흑자, 경상흑자를 이유로 우리를 환율조작국으로 의심하고 있다”며 “실제 개입물량을 공개하면 ‘누명’을 벗을 수 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미 재무부가 4월 추정한 과거 1년간 한국 환시 개입 규모는 국내총생산(GDP)의 0.2%에 불과하다.
/세종=이태규기자 classic@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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