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4년 4월8일. 16명의 ‘보통시민’이 기자회견대에 섰다. 이들은 강창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 등 원전 전문가와 환경단체, 원자력산업계, 원전 지역 주민 등 각계의 이야기가 수렴된 보고서를 발표했다. 신규 원자력발전소 계획을 전면 중단하는 대신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그리고 ‘수요관리 정책’이 에너지 정책의 중심이 돼야 한다는 내용이 골자였다.
화답하듯 노무현 정부는 에너지 정책의 중심을 수요관리로 옮겼다. 2002년 세웠던 1차 계획에서 5,665㎿였던 2011년 기준 수요관리 목표치도 2006년 3차 계획으로 두 배 수준인 1만44㎿까지 올려 잡는다. 발전소도 짓지 않았다. 2003년부터 3년간 신규 허가된 발전소는 없었다. 문제는 이명박 정부가 에너지 정책을 180도 틀었다는 점이다. 2008년 배럴당 140달러까지 원유값이 치솟았음에도 물가 급등 우려로 전기요금은 묶였다. 1만㎿가 넘었던 수요관리 목표치도 2010년 5차 계획에서는 4,724㎿로 반 토막 났다. 수요관리 정책의 핵심이 사라지면서 전력수요가 급증했고 결국 2011년 ‘9·15 정전사태’로 이어졌다. 이명박 정부는 이후 신규 발전소 계획을 급격히 늘려 잡았다. 근시안적인 에너지 정책이 초래한 결과다.
5년짜리 에너지 정책이 또 바뀌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탈(脫)원전을 꺼냈다. 에너지 자급률에 대한 기여도가 85%인 원전이 사라지면서 에너지 정책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 에너지 정책이 5년짜리에 불과했다는 현실을 감안할 때 성급한 탈원전이 매몰 비용과 사회적 갈등만 남긴 채 다음 정부에서 막을 내릴 수도 있다.
더욱이 16일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12년 기준 우리나라의 에너지자급률은 17.9%다. 1차 에너지를 절대적으로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가 자급률을 그나마 높일 수 있었던 것은 원전 때문이었다. 원전이 높인 자급률은 15.3%포인트다. 기여도는 무려 85.5%. 원전을 뺀 우리나라의 자급률은 2.6%로 일본(5.4%)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세종=김상훈기자 ksh25t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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