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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게 넘어질수록 더 높게 튀어 오른다”

이 기사는 포춘코리아 2017년도 10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쇼핑몰 키오스크의 제왕 맥스 제임스 Max James는 그 동안 수 많은 좌절을 겪어왔다. 그럼에도 그는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스스로 다짐하고 있다.


라스베이거스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한 맥스 제임스







맥스 제임스(74)는 기업인이 겪고 있는 삶의 기복을 잘 알고 있다. 테네시 주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캘리포리아 리/맥스 RE/MAX 프랜차이즈 지점들을 매입하기 전에는 베트남전에서 물에 빠진 전투기 조종사들을 구하는 공군 헬리콥터 조종사로 복무했다. 시장이 붕괴됐을 때 그는 영양보충제 쪽으로 사업 방향을 틀었다. 그 사업도 제대로 안되자 쇼핑몰 카트를 소유하고 운영하는 아메리칸 키오스크 매니지먼트 American Kiosk Management(이하 AKM)를 설립했다. 유통업이 하향세를 걷자 AKM의 매출은 2008년 최고 1억 7,500만 달러에서 지난해 8,000만 달러까지 추락했다. 제임스는 현재 회사 재도약을 목표로 서비스를 쇄신하느라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나는 테네시 주 험볼트 Humboldt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소작농이었다. 나는 여덟 살 때까지 두 마리 회색 노새에도 뒤처졌고, 그래서 트랙터 살 형편이 될 때까지 땅 경작법을 배워야 했다. 집 안에 화장실도 없었다. 나는 어머니가 밀가루 포대로 만들어준 셔츠를 입고 자랐다. 아버지는 ‘많이 알수록 더 많이 번다’는 사실을 내게 가르쳐주셨다. 나는 면과 껍질 깐 옥수수, 건초를 선택했고 그것

들을 통해 자립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농사를 싫어했다. 감사하게도 아버지는 내가 열세 살 때 다른 걸 경험해보라고 시내로 보내주셨다. 나는 식료품 포장 일을 했고, 옷 가게에서 옷도 팔았다. 그러다 고등학교 3학년 때 테네시 주 제8 선거구의 로버트 A. 에버렛 Robert A. Everett 의원 비서로 뽑혀 워싱턴으로 가게 되었다.

시골 소년에겐 매우 큰 행운이었다. 나는 테네시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고등학교 졸업 후 공군 아카데미에 들어갔다. 나는 군대의 규율과 조직이 마음에 들었다. 그러던 중 베트남전이 터졌다. 나는 졸리 그린 자이언트 컴배트 레스큐 Jolly Green Giant Combat Rescue 비행대대에 합류해 물에 빠진 전투기 조종사들을 구하는 일을 했다. 나는 두 번 격추됐고, 비행수훈십자훈장(Distinguished Flying Crosses) 3개를 받았다.

제대 후 나는 스탠퍼드 대학 MBA 과정을 거쳐, 자칭 ‘사우디의 판매왕’이라는 아드난 카쇼기 Adnan Khashoggi 밑에서 일했다. 세계 방방곡곡을 다니며 거래를 했고, 아드난의 요트에서 파티를 즐기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균형감각을 상실했음을 자각했다. 가족과 떨어져 해외에서 너무 오랜 시간을 보낸 것이었다. 그래서 일을 그만 두었다.

1987년 나는 가족을 새크라멘토로 이주시켰다. 그리고 부동산 사업을 시작했다. 미국 업체 데이스 인 Days Inn의 협력사가 돼 벌이가 짭짤한 호텔과 모텔을 지을 수 있었다. 그 후 나는 캘리포니아의 리/맥스 지점들의 독점사업권을 매입했다.

그러나 1990년 경기침체 때 심각한 재정 위기를 겪었다. 어쩔 수 없이 대출을 받았고, 꿈에 그리며 장만했던 집까지 팔아야 했다. 나는 파산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 때 영양보충제 업계 동료들이 내게 전화를 걸어 뉴 비전 인터내셔널 New Vision International이라는 네트워크 마케팅회사에 합류할 것을 권유했다.

그렇게 나는 유통업자가 됐다. 약 3만 명 규모의 조직을 만들어 많은 돈을 벌어들였다. 집까지 잃은 처지에서 월 8만 달러를 버는 사람으로 상황이 변했다. 그건 축복이었다. ‘세게 넘어질수록 더 높이 튀어 오른다’가 내 신조가 된 이유다. 일이 잘 안 풀릴 때 그 상황에서 교훈을 얻으면 더 큰 성공을 거둘 수 있다.

그러다 1996년 뉴 비전을 떠났다. 주의력 결핍증 개선을 위한 영양제 홍보 방법을 놓고 의견이 상충했기 때문이었다. 그 후 나는 쇼핑몰 키오스크에서 상품을 파는 네트워크 마케팅회사 메타볼라이트 Metabolite와 함께 일하게 되었다. 당시 나는 84개 메타볼라이트 카트와 키오스크를 오픈해 월 4만 달러를 벌 수 있었다. 이 사업을 좋아해 아메리칸 키오스크 매니지먼트를 시작하게 됐고, 카트에서 팔 다른 상품도 모색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디스크기어 Discgear, 요요, NFL과 NBA 의류, 에이본 Avon 화장품 등을 판매했다.



가장 큰 과제는 원활한 현금흐름을 통해 빠른 속도로 사업을 확장시키는 것이었다. 당시 쇼핑몰 입점 경쟁이 치열했기 때문에 다양한 투자자들과 함께 6개의 유한책임회사를 설립했다. 투자자들이 X만큼의 자금을 투입하면, 나는 그들이 원금을 회수할 때까지 이익의 70퍼센트를 배당했다. 회수 후엔 투자자와 내가 3:7로 이익을 분배했다.

각각의 쇼핑몰 입점에는 약 1만 달러가 들어갔다. 거기에는 판매할 상품 구입, 임대, 인건비가 포함되어 있었다. 초창기 우리는 전국은행과 계약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입점 때 쇼핑몰 내 혹은 주변 지역은행 지점을 선택해 야간 예금계좌를 확보해나갔다.

우리는 많은 은행을 확보해 매일 밤 전화로 각 지점에 예치된 금액을 확인했다. 그리고 페덱스 FedEx 체크로 매일 밤 상품 주문을 넣었다. 재고를 쌓아둘 만큼 자금 여력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상품이 매진된 몇몇 점포에선, 영업사원들에게 ‘인기 상품이라 재입고가 늦게 이뤄되고 있다. 사전 구매하면 재입고 때 가장 먼저 상품을 받아볼 수 있다’라고 말하라는 교육이 진행되기도 했다. 판매 상품 구비용 현금 확보를 위해 사전예약을 진행한 것이었다.

가장 인기가 높은 상품은 여드름 및 스킨케어 제품 프로액티브 Proactiv였다. 당시 프로액티브는 전화주문만 가능했다. 그래서 나는 쇼핑몰들을 대상으로 이 제품의 판매를 설득했다. 우리는 미국과 캐나다 내 유인 카트 최대 400대에서 프로액티브 상품판매를 진행했고, 자동화 기기에서도 해당상품 판매를 시작했다. 그리고 매일 새로운 쇼핑몰을 뚫어나갔다. 2008년 우리는 1억 7,000만 달러 규모의 프로액티브를 판매했고, 다른 상품들을 통해서도 5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릴 수 있었다. 그러다 2008년 경기침체가 닥쳐 매출이 급락했다.

요즘 쇼핑몰 업계는 완전히 아수라장이다. 아마존과 다른 온라인 기업들이 예상치 못한 속도로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우리는 유인카트 점포 수를 줄였고, 이제는 카트 약100대와 자동화기기 점포 600곳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도 8,000만 달러로 급감했다.

우리는 스스로를 혁신해야 했다. 우리의 명성 덕분에, 매주 5~6개 기업들이 쇼핑몰에서 자사 상품을 시연해 달라고 부탁해오고 있다. 자사의 인적자원관리나 마케팅 부서를 맡아달라는 요청도 들어오고 있다. 우리는 솔라시티 SolarCity, 레브론 Revlon 같은 기업을 위해 키오스크 테스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대부분 기업가들은 재정 사이클을 경험한다. 다음에 일어날 일을 그 누가 알겠는가? 나는 많은 기복을 겪어왔다. 지금은 하향세지만, 어느 때보다 높이 튀어 오를 것이라 믿고 있다. 회복력을 갖추고 변화를 받아들이면 되는 일이다.



실패 후 재기하는 법-아메리칸 키오스크 매니지먼트 회장 맥스 제임스

인내심을 가져라.
반등한다는 건 어떨 땐 시간과의 게임이다. 첫 부동산 사업이 잘 안됐을 때 나는 충격에 빠졌었다. 그럼에도 단순히 ’버틸 수 있는‘ 일자리는 거절했다. 더 나은 기회를 기다리다 보니 데이스 인의 협력사가 됐고, 평생 처음으로 일곱 자리 수(100만 달러 이상)의 순자산을 만질 수 있었다.

용기를 가져라.
1990년 집을 팔아야 했을 땐 임차료 내기도 힘들었다. 빚쟁이들까지 몰려들고 있었다. 내 재정 문제를 인정하는 굴욕감을 감내하며 친구들과 동료들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부탁할 땐 용기가 필요했다. ’언젠가 또 다른 실패에 직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 채, 사업가로서 재기를 시도할 땐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부 / INTERVIEW BY DINAH E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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