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은 초융합이다. 그런데 정부의 규제와 지원이 융합을 가로막는 장벽이다. 빠른 추격자 전략의 성공을 이끈 규제와 지원 정책이 이제 한국의 4차 산업혁명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돼버린 것이다. 규제개혁과 더불어 지원 정책의 문제를 분석해봐야 하는 이유다.
가두리양식형의 닫힌 지원 정책이 융합 저해의 본질이다. 정부 각 부처의 실·국·과는 개별적 지원 정책을 다음과 같이 추진하고 있다. 우선 법으로 정책 지원 대상을 정의한다. 다음에 선발 기준을 만들고 지원 대상을 선정, 지원하고 경직된 사후 통제를 한다. 여기에 감사원과 국회가 과도한 감사로 더욱 경직시킨다. 기획재정부는 예산을 할당하고 각 부처는 바쁘게 일하나 국부 창출은 거의 없다.
각종 지원 제도들은 부가가치가 없는 엄청난 서류 작업을 초래하게 된다. 개별 연구 항목과 개별 영수증, 인력을 통제한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다른 정책과의 융합 저해다. 예를 들어 특정 사업에서 지원된 예산에 편성된 직원은 다른 지원 사업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 지원 대상을 선정해 가두리양식장에 가두고 먹이를 주고 키워 개별 정책의 실적으로 포장하는 것이 현재의 정책들이다. 통제와 보호에서 자율과 경쟁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핵심이다.
이제 가두리양식형의 닫힌 지원에서 열린 광장형 개방 생태계로 지원 정책이 대전환돼야 한다. 국가 세금에 따른 개별 기업 지원은 축소해야 한다. 그리고 스스로 진화하는 개방 생태계를 키워야 한다. 개별 지원의 닫힌 정책 패러다임에 익숙한 공무원들이 열린 광장형 정책 패러다임에 적응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초융합·초연결의 4차 산업혁명에서 개별 지원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중소기업 지원 정책과 예산을 가진 대한민국의 중소기업 현황을 보면 현재의 지원 정책의 한계는 명확하지 않은가. 예를 들어 자영업 정책을 생각해보자. 600만 자영업자를 개별 지원하는 것은 코끼리 비스킷 정책이 될 가능성이 높다. 100만원씩만 지원해도 6조원이라는 엄청난 국민 세금이 소요된다. 그런데 자영업 생태계의 공급과 소비의 매칭 플랫폼을 민간 주도로 만드는 것은 저비용이고 한시적이다. 매칭 플랫폼으로 사회적 가치를 만들고 분배하는 과정이 순환하면서 생태계는 스스로 발전할 것이다. 즉 스스로 조직화되는 생태계 형성이 열린 정책의 목표다. 지원 정책은 여기에 한시적인 초기 마중물을 제공하는 것에 국한돼야 할 것이다.
산업 정책의 목표는 비용 지원이 아니라 가치 창출에 있어야 한다. 기업 활동의 본질은 가치-비용(value-cost)이라는 사회적 가치의 극대화에 있다. 그런데 공간 임대 비용, 개발 인건비 지원, 시장 개척비 지원 등 현재의 지원 정책의 성과는 비용 절감에 국한된다. 초기 창업 등 시장 실패 영역의 한시적 지원은 필요하다. 그러나 지속적인 세금 투입은 국부 창출 효과가 의문시된다. 이제 기업 활동은 기업가정신에 입각한 가치 창출(value)에 집중돼야 한다. 그런데 비용 지원은 기업가정신을 저해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우선 특정 기업 지원은 공정한 시장경쟁을 저해할 수 있다. 사업의 본질에 전념하는 기업보다 관 주변에서 기생하는 기업들이 혜택을 보는 레몬마켓(정보 비대칭으로 시고 맛없는 과일인 레몬만 남은 시장)이 만들어진다. 좀비 기업과 과다한 자영업이 건전한 생태계 형성을 저해한다. 또 현실에 맞지 않는 규정과 사후 통제 과정에서 정직한 기업가정신이 손상된다. 예를 들어 개발 초기에는 인력과 장비의 사전 계획은 불확실성이 높은데 제출된 서류대로 수행해야 한다. 서류 변경이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실질과 괴리된 서류 작업을 하다 보면 기업가정신을 훼손하는 결과가 초래된다.
이제 투입에서 성과로, 사전 통제에서 성과 평가로, 개별 지원에서 생태계 형성으로, 통제에서 자율로, 영역 다툼에서 개방 협력으로 지원 정책 패러다임의 대전환이 4차 산업혁명의 정책적 관건이다.
이민화 창조경제연구회 이사장·KAIST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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