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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이 그린 책 표지는 어떤 모습일까

성북구립미술관 '책 속의 화가'展

김환기 등 근현대 거장 30여명作

단행본·문학잡지 320여권 전시

이중섭이 그림을 그려 1958년 5월5일 출간된 마해송의 동화 ‘모래알 고금’의 표지. /사진제공=성북구립미술관




장욱진의 ‘아이들과 교회’(왼쪽)와 그가 표지를 그린 마해송의 동화 ‘앙그리께’가 나란히 전시 중이다.


출판산업이 자리 잡고 독립출판도 활발해지면서 ‘북디자이너’라는 용어가 일상적으로 쓰이지만, 1980년대 이전에 우리나라에는 전문적인 북디자이너가 없었다. 대신 화가들이 책 표지부터 면지·띠·책등 디자인과 제본까지 일련의 장정(裝幀) 작업을 도맡았다.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김환기(1914~1974)는 미술대학 졸업 2년 후인 1938년에 함세훈의 첫 장편소설 ‘폭풍전야’의 표지화를 그리며 처음 책 장정에 참여했다. 이듬해에는 동료 화가의 소개로 ‘문장’지에도 그림을 그리게 됐다. 을유문화사가 발간한 ‘학풍’의 1948년 11월호는 평생을 두고 애착을 둔 소재인 둥근 백자와 고고한 청자들이 등장하는 간략한 수채화로 표지를 장식했다. 단순하면서도 담박한 맛이 풍류를 더한다. 이 귀한 책들이 서울 성북구립미술관에 모조리 모였다. 오는 9일까지 열리는 ‘책 속의 화가’전이다. 193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김환기·이중섭·천경자·이응노·장욱진 등 근현대를 대표하는 화가 30명의 작업으로 탄생한 단행본과 문학잡지 등 총 320여 권을 전시 중이다. 이들의 대표작품 40여 점도 함께 걸렸다.

김환기가 1962년 6월에 표지를 그린 손소희의 ‘그날의 햇빛은’ /사진제공=성북구립미술관 ⓒ(재)환기재단·환기미술관


김환기는 그 유명한 김동인의 ‘발가락이 닮았다’(1948)와 계용묵의 ‘별을 헨다’(1949), 황순원의 ‘곡예사’(1952) ‘카인의 후예’(1954)의 표지를 그렸다. 단순한 선으로 표현한 인물, 반복된 선과 곡선으로 채운 화폭에서 추상 회화에 대한 의지가 두드러진다. 1955년에 발간된 윤동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나 1956년작 황순원의 소설집 ‘학’ 등의 표지는 달 뜬 푸른 하늘을 가르는 학이 등장해 그 자체로 완성도 높은 한 폭의 작품이다. 기하학적 문양만으로 채운 신석초의 ‘바라춤’(1959), 문인이었던 부인 김향안의 ‘파리’(1962) 등은 1960년대 초 본격 추상으로 넘어가는 김환기의 화풍 변화양상도 보여준다. ‘현대문학’ ‘문학예술’ 등의 표지를 꾸준히 맡았기에 시기별 작업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생전 작가는 책 표지화 작업에 대해 “손바닥 만한 한 컷이지만 나로서는 소홀히 날림으로 만든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성북구립미술관의 기획전 ‘책 속의 화가’ 전시 전경.




요절한 탓에 유작이 많지 않은 이중섭(1916~1956)을 다채로운 책에서 만나니 더 반갑다. 화가가 즐겨 그린 노는 아이들, 하늘을 나는 새와 까치, 반인반수 등이 각종 문학잡지 표지로 등장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 고희동(1886~1965)은 1914년 창간된 ‘청춘’ 표지호를 그렸고 전시장에서 만날 수 있는 조병옥의 정치평론집 ‘민주주의와 나’(1959)에서는 동양화와 서양화를 절충한 풍경화를 선보였다. 근대 한국화단에 큰 영향을 끼친 화가 겸 평론가지만 6·25 때 북으로 간 근원 김용준(1904~1967)은 청록파 시집 ‘청록집’(1946)의 표지와 함께 박목월·조지훈·박두진의 인물화도 그렸다. 이응노(1904~1989)의 수묵추상, 김흥수(1919~2014)의 색면분할과 모자이크기법의 추상화, 남관(1911~1990)의 문자를 활용한 추상화도 모두 책표지를 통해 볼 수 있다.

윤중식(1914~2012)의 온몸 맞댄 새, 박고석(1917~2002)의 산과 자연, 천경자(1924~2015)의 몽환적인 꽃과 여인, 최영림(1916~1985)의 벌거벗은 채 노는 인물상 등 그림만 봐도 화가를 알아챌 수 있는 책들이 흥미롭다. 장욱진(1917~1990)이 집 근처 성북동 산책 중에 우연히 알게 된 동화작가 마해송과 협업한 ‘앙그리께’는 동심을 추구한 화풍이 고스란히 담겼다. 둥근 얼굴을 갸우뚱 기울인 엄마와 아이 그림으로 유명한 백영수(1922~2018)가 표지를 그린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1978)은 그 해 가장 많이 팔린 책 중 하나였다고 한다. 수묵추상의 거장 서세옥(89)의 표지는 독립 작품이라 해도 될 정도고, 반복된 필치의 ‘묘법’을 책에도 그대로 적용한 박서보(87) 등도 자신의 기량을 아낌없이 쏟아부었다.

백영수가 표지를 그려 1978년 7월 출간된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사진제공=성북구립미술관


전시를 기획한 김경민 성북구립미술관 학예사는 “격동과 변화의 시대에도 한국의 문화예술가들이 작은 책과 지면 속에 펼쳐놓은 꿋꿋한 창조적 열망과 예술적 가치를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했다”면서 “특히 성북지역을 중심으로 예술적 교감을 나누었던 예술가들의 인연이 책 장정의 이면에 깃들어 있다”고 설명했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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