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오후 12시 32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상업항. 10일 전 부산항에서 실려온 대형 컨테이너 6개를 실은 화물 열차가 커다란 기적 소리와 함께 철로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화물 열차는 현대 글로비스가 지난 달부터 국내 최초로 시베리아횡단철도(TSR)에서 운영을 시작한 정기 급행 화물 열차(블록 트레인)로, 컨테이너 안에는 자동차 부품이 가득 실려 있다. 열차가 앞으로 12일 정도 쉬지 않고 달린 후 서쪽으로 1만555㎞ 떨어진 상트페테르부르크역에 닿으면 화물을 내려 현대자동차 러시아 공장으로 보내게 된다.
그간 현대글로비스는 바닷길을 이용해 43일에 걸쳐 현대차 부품을 부산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실어 날랐다. 하지만 이제 TSR 블록트레인을 활용해 22일 만에 부품을 보내고 있다. 운송 거리와 운송 기간이 모두 절반 가까이 줄어든 셈이다.
극동지역 최대 해운·철도 회사이자 현대글로비스의 협력사인 러시아 페스코(FESCO)의 알렌산더 이슐린스 사장은 “한국에서 모스크바까지 물류를 단축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현대 글로비스와 밀접한 협력 관계는 극동 러시아발전의 초석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구형준 글로비스 전무는 “신북방 물류 개척은 물론 물류비 절감, 러시아 극동에서 서유럽까지 이어지는 유라시아 물류 확대, 철도와 해상 이원화를 통한 비상 루트 확보, 금융 및 재고비 절감 등의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며 “1차적으로는 시베리아 철도를 이용해 북방물류를 개척하고, 2차적으로는 중국 횡단 철도와 시베리아 철도 연계, 유라시아 물류 확대 등을 추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우리 제품을 실은 전용 열차가 시베리아를 횡단하는 등 한국과 러시아의 물류 분야 협력이 구체화하기 시작한 가운데 올해로 4회차를 맞은 동방경제포럼(EEF) 현장에서는 한·러 양자에서 더 나아가 북한까지 포함한 남북러 3자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블록트레인 발차를 지켜본 이낙연 국무총리는 “대한민국은 한반도 허리가 두 동강 나 있기 때문에 섬 아닌 섬으로 살고 있다”며 “이 블록트레인이 한반도 종단 절차 TKR TSR을 연결하는 그 사업으로까지 연결된다면 우리 대한민국은 섬에서 벗어나 유라시아 대륙 일부로 명실상부 편입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날 오후 극동연방대학에서 EEF 행사 중 하나로 열린 ‘남북러 삼각협력’ 세션에서 이고르 마르굴로프 러시아 외교부 차관은 “올해는 한반도에서 긍정적 변화가 있는 시대라 평가한다”며 “장기간 한반도 개발을 위해서는 남북과 러시아 삼자가 합쳐서 어떤 경제적 효과를 이뤄낼 수 있을 지 철도, 전력 등의 공유에 대해 논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북한 대표로 세션에 참석한 김윤혁 조선 철도부상도 3자 협력에 대해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김 부상은 “조선반도 철도와 시베리아 철도 연결은 실현 가능한 국제적 협조 대상”이라며 “북남이 철도를 연결하고 활용하는 것은 조선종단 철도의 수송력을 마련하기 위한 요구를 반영한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측 참석자인 김정렬 국토교통부 2차관은 “김윤혁 부상과 저는 남북 종단 철도의 연결을 서로 협력해가는 협력 동반자”라며 “하루 빨리 대북 제재가 완화되어서 (남북) 협력사업이 속히 진전되고 실질적인TSK-TKR이 연결되기를 기대한다”고 답했다. 김 차관은 지난 광복절 축사에서 문 대통령이 제시한 ‘동아시아철도공동체’도 강조했다. 김 차관은 “남북 뿐 아니라 러시아, 중국, 몽골, 일본, 미국도 포함 된다”며 “동아시아가 상생 도약 하는 매개체가 되는 경제적 공동체로 이어질 수 있도록 기대한다”고 말했다. /블라디보스토크=정영현기자 yhchu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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