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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위산업 규제에서 육성으로] 무죄판결 50% 달하는데…비리집단 낙인에 수주전 불이익

<중> 발목잡는 주홍글씨 '방산비리'

유일한 내수고객 정부가 줄소송

2013년 80건 → 작년 124건 분쟁

과도한 수사 해외서도 신뢰잃어

"정부, 방산 육성보단 감시 초점

실적내기식 수사관행 바뀌어야"





#한국항공우주(047810)산업(KAI)이 17조원 규모의 미국 공군 고등훈련기 사업 수주에 실패하면서 정부의 과도한 ‘방산비리’ 수사가 다시 도마에 오르고 있다. 방산업계는 방산비리 수사가 KAI가 수주전에서 패한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지만, 간접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 있다. KAI가 이번 수주전을 앞두고 전사적으로 모든 역량을 쏟아 부어도 모자랄 판에 방산비리 수사로 어수선한 분위기가 계속되면서 입찰에 집중할 수 없었다는 분석이다. 실제 KAI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이후인 작년 7월부터 검찰로부터 고강도 방산비리 수사를 받았다. 정부가 방산비리를 적폐로 규정하고 대대적인 수사에 나서면서 국내 최대 방산업체인 KAI를 1차 타깃으로 삼은 탓이다. 검찰의 고강도 수사는 3개월 동안 계속됐고 김인식 전 KAI 부사장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정부가 국내 방산업체들에 비리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덧씌워 해외 수주전에서 불리하게 작용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해외 시장 개척을 통해 활로를 모색해야 하는 국내 방산 기업들이 방산비리 수사에 발목이 단단히 잡히고 있다. KAI를 비롯한 국내 방산 업체들이 정부의 고강도 방산비리 수사 여파로 비리 업체라는 낙인이 찍혀 시장 공략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방위사업청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정부와 방산업체 간에 진행 중인 소송 건수는 124건으로 전년(98건) 대비 26.5% 증가했다. 방산비리 수사가 본격화되기 시작한 2014년 정부와 방산업체 간에 진행 중인 소송은 71건에 그쳤으나, 매년 증가 추세다. 특히 2014년에는 새로 접수된 소송이 37건이었으나 2015년에는 62건, 2016년에는 65건, 작년에는 75건으로 늘어났다. 방산업체의 한 고위관계자는 “방위산업의 경우 국가가 유일한 고객이기 때문에 방산업체들이 국가를 상대로 소송하는 게 쉽지 않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송이 늘어난다는 것은 현재 방산업계의 상황이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방증한다”고 전했다.

정부의 방산비리 수사 자체를 문제로 볼 수는 없다. 방위산업의 경우 대규모 세금이 들어가는 만큼 허튼 돈이 엉뚱하게 새어나가지 못하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문제는 이 같은 정부의 방산비리 수사가 과도한 측면이 있다는 점이다. 특히 박근혜 정부 당시 대통령이 앞장서서 방산비리 척결을 외치면서 수사기관들이 실적을 올리기 위해 무리한 수사를 벌이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 방산비리 혐의를 받은 상당수가 무죄를 선고받았다. 방위사업청과 국방권익 연구소에 따르면 방산비리 수사 사건 무죄율은 일반 형사사건이나 권력형 비리사건에 비해 높다. 지난 2011~2017년 7년간 검찰이 주요 방산비리 사건으로 구속 기소한 34명 중 17명이 2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아 구속 후 무죄율이 50%에 달한다. 반면 일반 형사사건과 권력형 비리사건의 구속 후 무죄율은 10%가 채 안 된다.



미 공군 훈련기 수주전에 총력을 다해야 할 시점에 검찰 수사로 골머리를 앓았던 KAI의 수사 결과도 애초 검찰이 발표했던 것과 비교하면 초라하다. 검찰은 KAI 수사 결과에 대해 ‘국내 최대 방산업체의 경영 비리’라고 과대포장 했지만 실제로는 1심 재판에서 주요 혐의에 대해 무죄 선고가 내려졌다. 하성용 전 KAI 사장도 보석으로 풀려나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여태까지 진행됐던 정부의 방산비리 수사도 이와 비슷했다. 대부분 꼬리를 몸통으로 부풀려 결과를 발표하는 식이었다. 박근혜 정부는 군 검찰, 경찰, 검찰, 국세청, 관세청, 금융감독원 등으로 방산비리 합수단을 꾸려 총 1조원에 달하는 방산비리를 잡아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업계에 따르면 실제 정부에서 방산 업체에 청구한 구상권은 수십억 원 수준에 불과하다. 이는 합수단이 비리 총액이 아닌 사업 전체 예산 규모를 가지고 방산비리라고 부풀려서 발표했기 때문이다.

특히 이 같은 방산비리 프레임이 계속되면서 방산 기술 경쟁력 강화에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할 연구원들의 사기도 땅에 떨어졌다. 한 예로 지난 2015년 LIG넥스원(079550)의 선임연구원이 육군 대전차 미사일 ‘현궁’ 납품 비리와 관련해 수사를 받다가 자살한 사건이 있다. 당시에도 정부의 무리한 수사가 한 연구원의 목숨을 앗아갔다는 비판이 있었다. 실제 최근 이 사건은 무죄로 결론 났다. 안영수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방산비리 수사의 가장 큰 문제점은 감시 비용이 과도하고, 수사 결과 승소율이 낮은 데서 보듯 무리한 수사가 많다는 점”이라며 “과거에도 방산비리에 대한 강도 높은 수사가 있었으나 박근혜 정부 이후 초고강도 감시와 감사가 계속 이어지면서 방산업체의 피로도가 누적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이런 기조는 더 강화되고 있다. 특히 방산업체뿐만 아니라 방위사업을 감독하고 진흥하는 방위사업청에 대한 감사도 강화되면서 공무원들도 방위산업 육성보다는 자리보전을 위해 감시와 규제에 무게를 두는 실정이다. 방산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방산 육성보다는 감시에 중점을 두면서 담당 공무원들의 책임기피·사업지연·복지부동 등 모럴 해저드가 극대화되고 있다”며 “이는 궁극적으로 기업들의 기술 혁신 및 창의력 저하로 이어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방산업계의 한 관계자는 “방산 비리가 척결돼야 하는 대상임은 분명하지만, 시행착오와 비리는 구분돼야 한다”며 “무엇보다 방산업체들이 국산 첨단무기 개발과 양산이라는 본연의 업무에 전념할 수 있도록 미미한 결과를 부풀려 발표하는 실적 내기 식 관행은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병기기자 staytomorro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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