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0일 노사정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산하 노사관계제도관행개선위원회가 “해고자와 실업자, 소방공무원과 5급 이상 공직자의 노조 가입을 허용하라”는 내용의 공익위원 권고안을 제시했다. 그 취지는 현행법상 법외노조로 판단하는 근거 규정이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중 제87호인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 협약’에 배치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에 대해 경영계를 비롯한 전문가들은 공익위원 권고안대로 법 개정이 이뤄지면 그동안 논란이 된 ‘해직교사의 노조 가입 허용, 전교조 합법화, 공무원·교사 파업, 특수고용직 노조 설립, 노조전임자 확대’ 등이 정당화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물론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ILO 협약 제87호를 추가 비준하는 것을 공약으로 내건 바 있어 현 정부가 이를 추진하는 것이 나름 이해는 된다. 그러나 사회적 합의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단지 대선공약 실천을 위해 법 개정을 서두르는 것은 자칫하면 우리 노동시장을 더욱 경직시키는 결과만 초래할 수 있다.
ILO 협약 제87호는 전문에서 ILO 헌장의 취지대로 근로조건을 향상시키고 평화를 확립하는 데 제정 목적을 두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즉 이 협약을 비준하기 위해서는 근로조건 향상이라는 요건과 함께 평화 확립이라는 요건도 충족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번 경사노위 공익위원들이 제시한 권고안은 헌장 제정 취지 중 ‘근로조건 향상’에만 초점을 맞추고 ‘평화 확립’을 위한 입법적 고려는 전혀 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대한민국은 지난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면서 그 조건으로 ILO 핵심협약 8개를 비준하기로 약속한 바 있다. 그리고 현재는 이 8개의 협약 중 4개만을 비준한 상태다.
추정컨대 4개의 협약이 비준되지 못한 것은 아직 우리나라에서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도출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러한 이유로는 ‘한국 노조=강성노조’라는 이미지가 널리 확산하는 데 기여한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법 제도를 들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 대체근로 금지 규정, 부당노동행위 처벌 규정, 사업장 점거 허용 규정, 단기의 단체협약 유효 규정 등이 바로 그것이다. 대체근로 금지 규정이나 사업장 점거 허용 규정 등은 다른 선진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입법례다. 부당노동행위 금지 규정 역시 과도하게 노동시장을 경직화시키는 것으로 평화 확립이라는 충분조건을 충족시키는 데 커다란 장애요인이 되고 있다. 예를 들어 부당노동행위 위반시 우리나라는 엄격한 형사처벌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은 처벌하지 않고 단지 선언적으로만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또 우리나라는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만 처벌하고 있는데 미국의 경우에는 노조의 부당노동행위도 함께 규제하고 있다는 점을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결국 ILO 협약 제87호를 비준하기 위한 법 개정을 단행하기 위해서는 우리 노동법제의 글로벌화 내지는 선진화가 선결 과제라고 할 수 있다.
공익위원 권고안대로 법이 개정되는 경우 회사의 노사문제가 회사와 무관한 전문 노동운동가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 고위 공직자가 노조의 영향권에 편입돼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 유지와 공공개혁이 불가능해질 수도 있다. 물론 소방공무원의 경우 처우 개선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노조 설립 허용만이 유일한 해법이 될 수는 없다. 파업 등이 발생하는 경우 재난 구조 등에 대한 대안이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노조 범위 확대안이 사회적 공감대를 얻기에는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고 본다. 법 개정을 서두르기보다 대안이 함께 제시되는 공익위원 권고안이 새로 나올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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