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꽃밭이 펼쳐지니 보기만 해도 복을 받을 듯하다. 보물 제1975호 나전(螺鈿) 모란넝쿨무늬 경함은 고려 시대에 불교 경전을 보관하기 위해 만든 나전 경함이다. 나전은 전복이나 소라 같은 조개껍데기의 안쪽 면을 얇게 갈아내고 무늬대로 오려내 장식하는 것인데 ‘자개’라는 순우리말도 널리 쓰인다. 섬세하게 표현된 모란꽃이 무려 450개이고 이들 꽃은 넝쿨을 따라 연결돼 있다. 자개로 만든 모란꽃의 중앙에는 끝이 세 갈래로 갈라져 마치 꽃술 같은 보주(寶珠) 모양을 배치했고 그 양옆으로 꽃잎이 네 장씩 있다. 이렇게 꽃과 꽃을 이어주는 줄기로는 아주 가는 철사 같은 금속을 사용했다는 사실이 X레이로 확인됐다. 넝쿨무늬의 흐름을 더욱 자연스럽고 율동적으로 표현하기에는 자개보다 금속선이 더 적당했기 때문이다. 모서리 부분에는 원을 중심으로 선이 사방에 뻗어 나가 연결되는 마엽문(麻葉文), 몸체 하단에는 거북등무늬 같은 육각형 무늬인 귀갑문(龜甲文) 장식이 쓰였다. 이들 문양은 자개를 그냥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개를 가늘게 잘라 무늬를 표현하는 끊음질 기법이 사용됐다. 무늬와 무늬 사이의 경계, 함의 외곽 부분에는 금속선 두 개를 새끼줄처럼 꼰 형태로 도드라지게 배치했다. 이처럼 자개와 함께 금속을 사용한 것은 고려 나전칠기의 대표적 특징이기도 하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한창인 ‘대고려 918~2018: 그 찬란한 도전’ 특별전에서는 실물을 가까이에서 관람하며 정교한 문양을 하나하나 확인할 수 있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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