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시각] 산업혁명은 위로부터 오지 않는다

박현욱 여론독자부 차장





‘4차 산업혁명’은 난해하고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운데도 흔히 쓰인다. 신문·방송 뉴스는 물론 심지어 중고생 학원 광고문구에도 등장한다. 목적이 불분명해도 미래지향적 관용구로 일단 붙이고 본다. 지난 2000년대 초 배를 만드는 회사마저 스스로 ‘닷컴’기업으로 불리기를 원했던 인터넷 거품을 연상시킨다.

우리나라만큼 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가 세계적으로도 대중화됐을까.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해외에서 활동한 국내 과학기술계 학자나 연구원들의 전언에 따르면 미국·유럽에서 4차 산업혁명은 자주 쓰이는 말이 아니다. 실제로 영미권 매체에서 4차 산업혁명으로 검색되는 뉴스 건수는 우리와 비교하면 턱없이 적다.

우리가 유독 이 용어에 집착하는 이유를 혹자는 뒤처지는 것을 병적으로 두려워하는 성향에서 찾는다. 틀린 말은 아니다. 경제를 이끌 미래 성장동력에 대한 불안감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키워드를 불러냈다. 혁신, 저탄소 녹색성장, 창조경제 등등. 물론 사후평가는 낙제점에 가깝다. 문재인 정부의 핵심 신성장전략인 4차 산업혁명도 이제껏 점수가 후하지 않다. 대통령 직속 위원회까지 만들었지만 정작 혁신의 결과는 찾을 수 없고 미흡한 컨트롤타워 역할과 비효율성이 점수를 따지 못한 원인으로 지적된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관(官) 주도의 한계성이다. 요란하게 ‘4차 산업혁명’ 광고를 붙이고 급출발하는 모습에서 퍼스트무버(선도자)를 키우려는 어떤 의지도 발견하지 못하는 주자들은 대열에서 이탈해 각자도생하기 바쁘다.



한 사회가 고도화되려면 켜켜이 쌓인 과학기술과 이를 받아들이는 사회의 큰 품이 필요하다. 미국이 이제껏 그래왔듯 미래 신기술을 선도할 것이라고 많은 학자들이 믿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굳이 4차 산업혁명을 외치지 않는다. 구글·아마존·페이스북같이 축적된 기술과 데이터를 가진 미국의 글로벌 기업과 유망한 스타트업들이 포진해 있기 때문이다. 2016년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에서 처음 나온 4차 산업혁명 개념이 구글 같은 미국 기업을 견제하려는 의도로 유럽에서 만들어졌다는 해석도 있다.

이명박 정부 당시 정부 주도로 구글의 안드로이드에 대항하는 토종 모바일 운영체제(OS)를 만들겠다고 발표해 국내외 시장의 조롱거리가 됐다. 기업의 창의성·자율성과 사회 수용성을 무시하는 성장전략으로는 ‘토종 OS’ 같은 구태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그럴듯한 제목을 붙인 제안서로 예산 타내기에 바쁜 조직이나 이로써 연명하는 주변인들이 주도하는 4차 산업혁명은 껍데기일 뿐이다. 거창한 구호가 아닌 기술 강소기업에 대한 지속적 지원과 사회가 기술의 편익을 수용하도록 유도하는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 산업혁명이 ‘톱다운’ 방식으로 등장하지 않았음은 역사가 증명한다. /hwpark@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