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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 꼰대여도 좋다

윤홍우 정치부 차장





한국전 참전 용사이자 자동차 공장에서 은퇴한 월트 코왈스키. 그는 인종차별주의적이고 애송이 성직자를 깔보며 자신의 손녀에게조차 맘을 잘 열지 않는 완고한 노인이다. 전형적인 꼰대인 이 노인의 삶은 옆집 흐몽족 이민자들에 의해 균열이 생긴다. 자신이 애지중지하는 그랜토리노를 훔치려 했던 소년 타오를 용서하고 강간 위기에 놓인 수를 구해내면서 그는 그토록 경멸하던 이민자들의 친구가 된다.

자신이 원했던 상황은 아니지만 그는 변화를 받아들이고 새로운 관계에 맘을 연다. 이를 통해 그는 한국전이 남긴 마음의 상처를 조금씩 치유해간다. 노동의 즐거움을 가르치며 타오의 좋은 인생 스승도 된다. 아쉽게도 해피엔딩은 아니다. 갱단에 위협받는 남매를 구하기 위해 월트는 갱단을 찾고 그들을 죽이는 대신 ‘손가락 총’을 꺼내 들며 총알 세례를 맞고 생을 마친다.

거장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에 만든 영화 ‘그랜토리노’. 이 영화는 미국 보수의 가치를 가장 잘 구현했다는 찬사를 받았다. 완고하되 열려 있고 포용의 미덕을 갖췄으며 결정적일 때 희생하는 보수는 비록 ‘꼰대’여도 매력 있다.

꼿꼿한 월트의 모습이 떠오른 건 며칠 전 자유한국당의 릴레이 단식 농성을 보면서다. 조해주 선관위원 임명을 반대한다면서 소속 의원들이 5시간30분씩 단식을 교대하는 희한한 방식이 동원됐다. 보수 가치를 대변한다는 정당에서 ‘웰빙’도 이런 웰빙이 없다. 어쩌다 한국 보수는 부끄러움도 모른다는 조롱을 받게 됐을까. 이번 일이 한바탕 해프닝이라 쳐도 보수의 정책과 인물이 장기간 부재하고 신뢰가 실종된 것은 엄연한 한국 정치판의 현실이다.



문재인 정부가 벌써 집권 3년 차를 맞았다. 소득주도 성장으로 대표되는 경제정책이 곳곳에서 파열음을 빚고 고용지표는 수년 내 최악이다. 그런데 앞서 10년을 집권했던 보수 세력이 정교한 정책대안 하나를 내놓지 못한다. 전혀 차별성 없는 ‘규제 완화’만 앵무새처럼 되뇔 뿐이다. 되레 진보학자들 사이에서는 “소득주도 성장을 위해서는 부동산 불로소득부터 잡았어야 한다(이정우 전 참여정부 정책실장)”는 솔깃한 비판이 나온다.

상황이 이 지경인데 보수의 싱크탱크라는 여의도연구원이 최근 내놓은 보고서도 눈을 의심케 한다. 청와대 홈페이지에 공개된 대통령의 일정을 ‘빅데이터’씩이나 돌려서 분석해 ‘방콕 대통령’이라는 결론을 만들어냈다. 집무실에 있다고 ‘방콕’을 한다는 해괴한 논리에 같은 당 의원들까지 실소를 터트렸다. 미국 헤리티지재단이 이런 보고서를 냈으면 해외토픽감이 됐을 것이다.

이러니까 한국 정치판에는 수구는 있지만 보수는 없다는 말이 나온다. 지키려는 가치는 불분명하고 변화에 귀를 닫으니 세가 불지 않는다. 대통령 경제 참모가 청년과 장년층을 향해 막말을 던져도 한국당의 지지율은 30%를 넘지 못한다. 내년 총선에서 보수의 운명을 가를 한국당의 전당대회가 시작됐다. 후보들은 저마다 ‘태극기 보수’를 잡겠다고 나서고 어떤 후보 입에서는 ‘핵무장’ 발언까지 나왔다. 흥행은 되겠지만 웰빙 보수, 막장 보수의 한계는 자명해 보인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20년 장기 집권론’은 오만이 아니라 현실이 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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