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개발을 위해 20여년간 이어온 SK그룹의 묵묵했던 투자가 결국 빛을 보기 시작했다. SK바이오팜이 독자 개발한 혁신 신약이 미국 식품의약국(FDA) 신약판매허가신청(NDA) 심사가 개시된 데 이어 유럽 시장을 대상으로 한 5억 달러 규모의 기술수출에 성공했다.
SK바이오팜은 뇌전증(간질) 신약 후보물질인 세노바메이트의 유럽 내 상용화를 위해 스위스의 아벨 테라퓨틱스와 5억3,000만달러(약 6,000억원) 규모의 기술수출 계약을 체결했다고 14일 밝혔다. 반환조건 없는 선 계약금은 1억 달러(약 1,120억원)으로 향후 신약 시판허가 등 목표 달성 시 계약금 총액 중 나머지 금액인 약 4억3,000억 달러를 받게 된다. 이번 계약금 규모는 한미약품이 사노피에 기술수출한 에페글레나타이드 지속형인슐린콤보(2억400만유로)와 얀센에 기술수출한 지속형 비만당뇨약(1억500만달러)에 이은 역대 3위 규모다. SK바이오팜은 세노바메이트의 유럽 시판이 시작되면 판매량에 따른 로열티도 지급받을 예정이어서 실제 매출을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글로벌 임상 3상을 완료하고 FDA에서 NDA 과정을 진행하고 있는 만큼 계약 금액의 대부분을 수령할 수 있을 것”이라며 “로열티까지 포함하면 이번 계약을 통해 10억 달러(약 1조1,200억원)의 수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여기에 아벨의 신주 상당량을 인수할 수 있는 권리 역시 확보해 향후 기업가치 제고에 따른 추가 수익도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스위스에 본사를 둔 아벨은 중추신경계 질환 신약 개발 및 판매를 위해 미국의 노바퀘스트 캐피탈 매니지먼트와 유럽 LSP 등 헬스케어 분야 투자사들이 합작해 설립했다. 아벨은 세노바메이트 개발에 인력과 자금을 우선적으로 투입하고 SK바이오팜이 보유한 글로벌 임상데이터를 토대로 유럽의약품청(EMA)에 신약판매허가를 제출할 계획이다. EMA 시판 허가 시 세노바메이트는 영국, 독일, 프랑스, 스위스를 포함한 유럽 32개국에 판매된다.
이번 유럽시장 기술수출은 SK바이오팜의 글로벌 전략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세계 최대 제약시장인 미국에서는 임상 전 과정부터 NDA까지 신약 독자개발을 통해 수익을 극대화하고 유럽에서는 시장 특성을 고려해 현지에 거점을 둔 파트너사와 전략적 제휴를 추진한다는 것이다. SK 관계자는 “유럽 시장도 작지 않지만, 미국 시장은 뇌전증 치료제 시장의 80%를 차지한다”고 귀띔했다.
업계에서는 이번 유럽시장 기술수출 규모를 고려했을 때, 전세계 뇌전증 치료제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미국에서 세노바메이트 시판 시 수익 규모가 큰 폭으로 늘어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SK바이오팜은 지난해 말 FDA에 NDA 제출을 완료했으며 최근 FDA가 심사 개시를 공식화함에 따라 올해 11월 세노바메이트의 시판 허가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시판 허가 시 SK바이오팜은 2020년 미국 내 판매를 시작으로 유럽을 거쳐 향후 한·중·일 등 아시아 지역에서도 세노바메이트 상업화를 추진할 계획이다.
시장조사업체 글로벌데이터에 따르면 뇌전증 치료제 시장 규모는 2018년 62억 달러(약 6조8,000억원) 수준에서 2021년에는 70억 달러(약 7조8,000억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했다. 1993년 신약개발 시작 이후 중추신경계 질환 신약개발에 주력해온 SK는 최태원 회장의 강력한 의지에 따라 장기간 지속적인 투자를 멈추지 않았다. 조정우 SK바이오팜 대표는 “이번 계약을 통해 세노바메이트의 신약 가치를 글로벌 투자자들로부터 인정받은 것이며 아벨과의 긴밀한 협조를 통해 유럽 시장에 가능한 빨리 출시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영탁기자 ta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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