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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사회, 우리가 보듬어야 할 이웃]희귀질환법 시행 2년 지났지만...조기진단 체계 미흡에 '병원 방랑'

⑨ 희귀질환자 - 갈길 먼 정부대책

환자 45% 병명 확인하는데만 1,000만원 넘게 지출

극희귀질환자 산정특례·고액치료 건보 문턱도 높아

희귀질환 거점센터 확대·진단검사의학과 육성 시급





희귀질환으로 고통받는 환자와 가족의 절규가 잇따르자 정부도 지난 2016년 희귀질환관리법을 도입하고 지원책 마련에 나섰다. 하지만 예산과 인력 등의 부족으로 희귀질환자들은 여전히 체감할 수 있는 대책이 미흡하다고 입을 모은다. 단기간의 성과에 급급할 게 아니라 장기적인 관점에서 대책을 수립하고 환자의 의견을 수렴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보건복지부는 2016년 12월 시행한 희귀질환관리법을 시작으로 이듬해 ‘제1차 희귀질환관리 종합계획’까지 발표했다. 50만명에 이르는 국내 희귀질환자는 정부가 희귀질환 문제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며 일제히 환영했다. 하지만 제도 시행 2년이 지났지만 환자들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하다. 각계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희귀질환관리위원회까지 나서 각종 대책을 마련했지만 갈 길이 멀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가장 시급한 분야는 희귀질환을 조기에 진단할 수 있는 의료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전체 희귀질환자의 16.4%는 증상 자각 이후 4개 이상의 병원을 방문한 끝에 최종 진단을 받았다. 환자의 64.3%는 진단을 받기까지 1년 미만이 소요됐지만 6.1%는 최종 진단에 10년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전체 환자의 절반에 가까운 45%는 병명을 확인하기까지 1,000만원 이상을 지출했다.

희귀질환 중에서도 환자 수가 200명 이하인 극희귀질환자는 더욱 고충이 크다. 증상이 엇비슷한 희귀질환이 많아 제대로 진단이 이뤄지지 않으면 오진으로 이어지고 엉뚱한 치료제를 복용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병명을 알지 못하면 외래치료비와 입원비의 10%만 부담할 수 있는 산정특례 대상으로 선정될 수 없어 극희귀질환자는 조기 진단을 위해 생업까지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정부도 극희귀질환 87종을 대상으로 무료로 유전자검사를 받을 수 있는 진단지원사업을 하고 있다. 유전자검사에서 병명이 나오지 않으면 추가 검사가 진행되고 여기서도 진단이 내려지지 않으면 상세불명 희귀질환 산정특례에 등록이 가능하다. 하지만 극희귀질환 산정특례 기준이 까다로워 환자들의 경제적 부담이 여전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 때문에 진단을 받지 못한 희귀질환자들에게도 한시적으로 산정특례 혜택을 부여하는 방안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병명을 알기 위해 각종 검사를 받고 여러 병원을 찾아다니는 일명 ‘진단 방랑’을 막기 위해서라도 선제적인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얘기다. 의료계는 10년 넘게 검사를 계속 받았지만 병명을 알아내지 못해 아예 진단과 치료를 포기하는 환자도 상당수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다.



신현민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장은 “희귀질환의 80%가량이 유전질환인 탓에 가족 중에 환자가 여럿 있는 사례가 많다”며 “당장 생명에 지장은 없더라도 대부분 환자가 평생 치료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어렵고 저소득층에 내몰리게 된다”고 말했다.

고액 치료제의 건강보험 적용을 위한 ‘경제성평가특례제도’도 희귀질환자와 그 가족에게 문턱이 높기는 마찬가지다. 2014년에 도입된 이 제도는 건강보험 적용 대비 효과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어려운 의약품에 대해 예외적으로 급여를 적용한다. 하지만 혜택을 받으려면 대체 가능한 치료법이 전무하거나 해당 치료제의 약가가 선진 7개국의 최저 평균가 이하여야 한다는 조건이 따른다.

희귀질환자를 위한 권역별 거점센터 확충도 시급한 과제다. 정부는 올 들어 전국 희귀질환 거점센터를 기존 4곳에서 10곳으로 늘리고 중앙지원센터를 마련하겠다고 밝혔지만 환자들의 체감지수는 여전히 낮다. 중증외상환자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쏟아지자 정부가 권역외상센터를 전국 17개소로 확대하겠다고 발표한 것과 대조되는 부분이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은 “희귀질환은 병명과 증상이 천차만별이어서 지역 의료기관의 규모나 역량으로는 한계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라며 “희귀질환 거점센터를 지속적으로 확대해 환자의 치료 편의성과 의료 접근성을 강화해나가겠다”고 말했다.

희귀질환 진단의 핵심 인력인 진단검사의학과 전문의를 확보하는 문제도 시급하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의과대 전공의가 지원한 26개 과목의 정원 대비 충원율은 평균 93.4%로 나타난 반면 진단검사의학과는 66.7%에 그쳤다. 정부는 2013년부터 진단검사의학과를 육성지원과목으로 선정해 의대생들의 지원을 독려하고 있지만 사실상 기피 과목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채종희 서울대 소아청년과 교수는 “희귀질환의 치료에 쓰이는 대마 성분 의약품도 올해 들어서야 겨우 허용되는 등 상대적으로 희귀질환 대책은 환자 수가 적다는 이유로 정부 정책에서 소외되고 있다”며 “중증질환에 대한 보편적 지원도 중요하지만 선택적 의료복지 차원에서 희귀질환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정책적 지원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지성기자 engin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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