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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워치] 예리한 판단...과감한 결단...野戰 내공 빛나는 CEO들

냉혹한 영업전선서 잔뼈 굵어

시장서 먹힐 아이템 무궁무진

하루에 전국 공장 4개 누비고

고객 배려하는 소통력도 탁월

"현장 겪어봐야 더 높이 오른다"

사원들 성공공식으로 자리잡아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부회장




이대훈 NH농협은행장/권욱기자


신영섭 JW중외제약 대표


김도진 기업은행장/권욱 기자


정윤석 신일 대표


“만약 이번 시도로 우리 회사가 손실을 본다면 제가 그 책임을 지고 자리를 내놓겠습니다. 영업본부장으로서 이번 프로젝트는 새로운 영업통로를 뚫기 위한 중요한 시도라는 점에서 반드시 추진해야 한다고 판단합니다.”

지난 2013년 6월 어느 날, 서울 구로구 신일 본사에서는 회사가 처음 시도하는 ‘홈쇼핑 채널’ 진입 여부를 놓고 갑론을박이 한창이었다. 당시 영업업무를 총괄하던 정윤석 본부장은 신유통채널 확보가 정체된 회사의 매출을 크게 키울 수 있는 터닝포인트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회사에서는 누구도 걸어보지 못한 길에 대한 두려움으로 결론이 나지 않는 상황이었다. ‘대한민국 선풍기의 본가’로서 신일은 기술력을 오랜 시간 다져왔지만 직접판매에 가까운 홈쇼핑 방송은 초기에 들어가는 비용도 많고 영업이익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직(職)을 걸고 경영진을 설득했던 정 본부장 자신도 ‘만약 수억원을 들여 방송을 했는데 처참하게 실패하면 어떻게 만회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면서도 ‘영업맨’으로 읽어낸 고객 니즈에 기대를 걸어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렇듯 어려운 과정을 거쳐 시도한 신일의 홈쇼핑 데뷔는 그야말로 초대박이었다. 자신감을 얻은 신일은 이후 첫 방송을 시작한 GS홈쇼핑을 비롯해 전 홈쇼핑 채널을 아우르며 히트상품을 연달아 내놓는 데 성공했다.

당시 무모하지만 성공적인 결단을 내린 정 본부장은 2018년 4월 신일 최고경영자(CEO)에 오르며 입지를 굳게 다지고 있다. 영업맨의 노하우를 십분 활용해 사물인터넷(IoT)을 활용한 가전은 물론 펫 가전에 이르기까지 보폭을 넓히고 있다. 정 대표에게 영업이 회사에서 차지하는 의미를 묻자 “영업은 기업의 최전방이기에 소비자 또는 바이어가 어떤 제품을 원하는지를 가장 빠르게 잡아낼 수 있는 위치에 있다”며 “예전에는 연구소나 생산 쪽에서 제품을 개발해 양산하면 수동적으로 판매했지만 이제는 영업의 시각에서 시장에 먹힐 수 있는 아이템을 제안하고 연구소에서 이를 기술로 뒷받침해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보이지 않는 전쟁터’인 영업전선에서 노하우를 쌓아온 이들이 CEO에 오르는 것은 신일만의 사례가 아니다. 금융가 역시 회사 대표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영업통으로 잔뼈가 굵은 이들이 눈길을 끈다.

김도진 기업은행장은 인천 원당지점장을 맡고 있던 2008년 당시 전국 1등 지점장으로 뽑힐 만큼 뛰어난 영업실적을 자랑했다. 하루 평균 4개 공장으로 영업을 다니는 등 발로 부지런히 뛴 덕분이다. 김 행장과의 인연으로 기업은행을 주거래은행으로 삼은 한 제조업체 대표는 “김 행장은 전화를 한번 할 때도 ‘세상에서 제가 가장 존경하는 우리 대표님’이라는 극존칭을 써가며 기분 좋게 하는 탁월한 재주가 있다”며 “기업인들 상당수가 내가 가장 잘났다고 생각하고 사는 사람들인데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도 김 행장만의 차별화된 영업능력이 아니겠느냐”고 귀띔했다.

SC그룹의 첫 한국인 행장인 박종복 SC제일은행장은 1979년 당시 제일은행에 입사해 대졸 은행원으로서는 드물게 일선 지점 10여곳에서 20여년간 영업맨으로 근무했다. PB강남지역본부장·영업본부장·소매채널사업본부장 등을 거치며 CEO 자리에까지 오른 덕분인지 현장 중심의 다양한 사업 아이디어가 많다. 은행원이 손님이 원하는 곳으로 찾아가 태블릿PC로 은행 업무를 도와주는 ‘모빌리티 플랫폼’이 대표적인 사례다. 허인 국민은행장, 이대훈 NH농협은행장도 업계에서 알아주는 영업전문가다. 이대훈 행장은 지점 영업직 시절에 명절용 고기 선물세트의 부위까지 꼼꼼히 챙길 만큼 섬세한 영업으로 손님들을 사로잡았고 2004년부터 10년 동안 수원 광교지점장을 맡아 실적 1위를 달렸다. 덕분에 본점 부장에 이어 행장 자리까지 올랐고 지난해 말에는 NH농협은행 사상 처음 연임에 성공했다.

증권가 역시 영업맨 출신 CEO가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대표적 사례가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부회장이다. 올해 대표이사직을 내려놓기까지 유 부회장은 한국투자증권에서만 12년간 사장을 지냈다. 그는 과거 대우증권 영국 런던법인 재직 시절에 탁월한 영업력으로 ‘전설의 제임스’라고 불렸다. 영화 ‘007’의 제임스 본드처럼 고객이 원하는 모든 것을 제공해 얻은 별명이다. 실제로 증권가 대표이사직은 대표 영업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대형 IB 증권사 대표는 지난달 해외로 1박3일 출장을 다녀왔다. 빠듯한 일정으로 주말까지 반납한 그는 기업공개(IPO) 주관을 맡기 위해 중견·중소기업 오너들과의 골프 모임에 참석하려 비행기를 탔던 것. 그는 “대표가 직접 뛰어야 진정성과 절실함을 전달할 수 있다”며 당연한 일이라고 했다.

이처럼 30년 안팎의 증권사 영업 노하우를 가진 CEO들이 경쟁하니 직원들도 당연히 발로 뛸 수밖에 없다. 대신 증권가에서는 영업맨에게 두둑한 인센티브로 확실하게 보상한다. 최근 공개된 2018사업보고서에서도 급여 1억원 미만의 대리·과장급 직원이 10억원 안팎의 상여금을 받아 오너나 CEO보다 더 많은 보수를 챙기며 화제가 됐다. 또 증권가에는 ‘압구정·반포·도곡 등 강남지역 주요 지점에서 ‘눈에 띄는 영업맨일수록 승진 속도가 빠르다’는 이야기가 성공공식으로 굳어질 정도로 성과를 낸 영업맨에 대한 보상이 확실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업의 난이도로 치면 ‘가장 힘들다’는 평가를 받는 제약업계에서도 영업맨 신화가 제법 눈에 띈다. 경옥고 등으로 유명한 광동제약의 경우 창업주인 고 최수부 회장이 대한인삼제약사에서 대리점 대표 등으로 활약한 정통 영업맨 출신이다. 신영섭 JW중외제약 대표도 제약업계에 뛰어든 뒤 약 30년간 정통 영업맨으로 활약해왔다. 국내 제약업계 최장수 CEO로 활약하다 3월 은퇴한 이성우 삼진제약 대표도 회사에서 영업 부문 임원 등을 지내며 판로를 넓혔다는 평가를 받는다. 삼진제약은 이 전 사장 후임으로 4인 대표 체제를 꾸렸는데 그 중 최용주 대표도 영업 부문 부사장을 지내 주목받았다. 이광식 환인제약 회장과 한국유나이티드제약을 창업한 강덕영 회장도 제약 영업판에서 바닥을 다지며 기업인으로서 발판을 마련했다.

이처럼 제약사 창업주나 대표 가운데 영업맨이 많은 것은 국내 제약산업의 역사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대부분의 제약사가 내수를 위해 해외 유명약품의 라이선스 생산이나 유통에 골몰하던 과거에는 투자비용이 많이 필요한 기술개발보다 판로확장을 위한 영업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연구개발이나 기획 부문의 인재보다 유통실적이 뛰어난 영업맨들의 입김이 세지고 이들이 회사의 주류가 되는 상황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이수민·김광수·유주희기자 noenem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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