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정상담판을 앞둔 무역분쟁의 불확실성과 그로 인한 글로벌 경기침체 우려가 시장을 짓누르는 가운데 이란을 둘러싼 중동발 리스크까지 더해지면서 엔화와 금 등 안전자산으로 글로벌 자금의 쏠림 현상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기간인 오는 29일 열리는 정상회담에서 무역전쟁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미·이란 간 갈등이 악화 일로로 치달을 경우 안전자산으로의 자금 도피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25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대표적 안전자산으로 통화는 엔화에 대한 매수세가 확대되면서 이날 엔·달러 환율은 장중 106.79엔까지 급락(엔화가치 상승)해 지난 1월3일 이후 5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르면 다음 달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0.50%포인트의 금리 인하를 단행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며 달러화 하락 압력이 확대되고 있는데다 G20 정상회의 기간에 예정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별도 회담에 대한 결과가 여전히 불확실성이 높아 엔화 가치는 최근 상승 흐름을 이어 왔다. 여기에 이날 트럼프 대통령이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를 겨냥한 대이란 추가 제재 행정명령에 서명을 하는 등 중동발 리스크가 고조된 점도 엔화 매수세를 자극한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마크 챈들러 배녹번 글로벌 포렉스 수석 시장 전략가는 “G20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의 회담이 예정된 가운데 미국이 이란에 대해 추가 제재를 단행하면서 투자자들의 불안은 더욱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시장에서는 향후 글로벌 경기 동향과 미 연준의 움직임에 따라 엔·달러환율이 추가 하락할 가능성에 무게를 싣고 있다.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전 일본 재무성 재무관은 니혼게이자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글로벌 저성장이 이어지면 엔화 가치가 내년 초에 달러당 100엔에 육박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블룸버그가 최근 50명의 글로벌 이코노미스트를 상대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연준이 금리 인하를 단행할 경우 엔·달러 환율이 105엔까지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안전자산 선호 속에 국제 금값도 연일 오름세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21일 뉴욕상업거래소에서 2013년 9월 이후 처음으로 온스당 1,400달러 선을 넘어선 금 가격은 이날 1,418.20달러까지 치솟았다. 이는 2013년 8월 이후 약 6년 만의 최고치다. 시장전문가들은 각종 지정학적 리스크와 중앙은행들의 통화완화 정책으로 금 가격이 연말까지 1,500달러까지 오를 것으로 보고 있다. 싱가포르 유나이티드오버씨스뱅크(UOB)의 헹쿤 호는 시장전략 책임자는 “금값 강세 전망을 유지하며 온스당 1,450달러 도달 시점이 당초 예상했던 내년 중반보다 상당히 앞당겨질 것 같다”고 내다봤다.
이러한 안전자산 선호현상은 일단 이달 말 G20에서 개최될 미중 정상회담 결과에 따라 방향성을 정할 것으로 보인다. 덴마크의 단스케 은행은 “무역 협상에 진전 없이 미국과 글로벌 매크로 지표가 약하게 나오면 달러 약세가 지속되면서 안전자산 선호 현상은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노현섭기자 hit812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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