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기업들이 몸집을 더욱 불리기 위해 ‘입지적 우위’를 십분 활용하고 있다. 경쟁업체와 근로자, 그리고 소비자들은 왜 이 현상을 경계해야 할까? By Erika Fry
최근 수십 년간 미국에서, 국가 경제성장의 과실이 소수 부유층에만 돌아간 건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유사한 현상이 미국 재계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총 매출의 더욱 많은 부분이 비교적 적은 수의 대기업들에만 집중되고 있다는 것이다: 바로 거인 기업들의 탄생이다.
멀리 갈 필요 없이, 이번 호의 포춘 500대 기업만 봐도 알 수 있다. 지난해 미국 500대 기업은 13조 7,000억 달러라는 기록적인 매출을 올렸다. 미국 경제규모의 3분의 2를 상회하는 수치다. 총 매출 가운데 47.7%에 이르는 수조 달러를 상위 50대 기업이 올렸다. 작년에 집계한 2017년 비율 46.9%에서 증가한 수치다. 15년 전에는 43.7%, 1995년에는 41%로 더 적었다.
대기업들이 점령한 미국 내 최근 상황을 고려하면, 다음 해 이 수치(상위 50대 기업의 비중)가 절반에 달하는 점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올해 8위를 차지한 대형 약국체인 겸 보험약제관리기업 CVS는 작년 말 애트나를 집어 삼켰다. 애트나는 2018년 포춘 500대 기업 순위에서 49위를 차지한 미국 내 최대 보험사 중 한 곳이다.
한편 9위에 오른 AT&T는 타임 워너를 손에 넣었다. HBO와 터너 브로드캐스팅, 워너 브라더스를 소유한 타임 워너(작년 순위 98위) 역시 연예산업에서 짭짤한 매출 313억 달러를 올린 거물이다. 31위의 마라톤 정유(Marathon Petroleum)도 포춘 선정 100대 석유 정제기업 엔데버 Andeavor를 인수했다.
혁신과 사업적 감각이 정당하게 보상받는 경제 시스템으로의 자연스러운 진화일까? 아니면 우려할 만한 심각한 일이 진행 중인 걸까?
경제학자들은 산업 집중 현상?소수 대기업들이 업계를 완전히 장악하는 수준이다?이 증가하는 다양한 이유를 제시한다. 하지만 이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모두 동의한다(사실 경제학자가 아니더라도 알 수 있다. 당신이 다니던 약국 라이트 에이드는 이제 월그린스 소유가 됐다. US 항공이나 콘티넨털 항공도 다른 기업에 인수돼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아마존에서는 홀 푸드 식료품을 포함한 거의 모든 물건을 구입할 수 있다).
보스턴대학교의 경제학자 제임스 베센 James Bessen은 “대기업 집중화가 국가적 수준으로 팽창하고 있다는 점은 자명하다”고 설명한다. 그는 최상위 대기업들이 경쟁자들을 앞서는 이유를 연구해 왔다. 베센은 IT기술의 역할을 지적한다. 그는 “특허 소프트웨어에 집중 투자했던 기업들이 현재 경제 체제에서 분명한 승자로 떠올랐다(종종 이들은 우연히도 규모가 가장 큰 기업들이었다). 그 결과 생산성과 매출, 노동력에 있어 더 큰 우위를 누리고 있다”고 말한다.
한때 법무부 반독점 부서에서 일했던 예일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피오나 스콧 모턴 Fiona Scott Morton은 그 이유를 데이터의 역할에서 찾는다. 그녀는 “자연스러운 집중 효과가 있다. 데이터를 많이 축적한 기업들은 저렴하게 ‘규모의 경제’를 달성할 수 있고, 피드백과 네트워크 효과에서 훨씬 더 수혜를 본다. 데이터가 더 많을수록, 소비자에게 매력적인 제품을 만들어 내는 것이 수월하다”고 설명한다.
피오나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은 “기술과 데이터가 경제를 재편성하고 있기 때문에?대기업들의 합병을 막고 혁신을 촉진할 수 있었던?독점금지 정책은 거의 사문화됐다. 최소한 40년은 후퇴한 셈이다. 물론, 동시에 진전이 있는 곳도 있었다”고 말한다.
한편, 펜실베이니아대학교 법학과 교수이자 반독점 전문가인 허버트 호벤캠프 Herbert Hovenkamp는 “대기업들의 기득권을 보호하는 반경쟁 관행이 만연해 있다. 대기업들은 직원들에게 경쟁금지 조항에 동의하도록 강요하고 있다. 일반 직원들의 전직을 힘들게 해 임금 인상을 효과적으로 제한하는 것이다. 기술 대기업들의 경우에는 잠재적 경쟁자가 나타나는 즉시 바로 인수한다. 아마존이 2010년 다이아퍼스닷컴 Diapers.com의 모회사 퀴드시 Quidsi를 손에 넣은 사례가 대표적이다. 신생기업들은 대기업의 경쟁자로 성장할 기회를 갖기도 전에 인수된다”고 비판했다.
우리가 이 모든 것을 우려해야 할 상황인가? 경제학자들은 “상부만 너무 커져버린 경제 구조는 상당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고 경고한다. 이런 경제에서는 상대적으로 적은 수가 재원의 가장 큰 몫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경제적 산출량은 감소하고, 물가는 높아지며, 선택의 폭은 줄고, 결국 혁신이 가로막힌다. 또한 경제력은 정치적 힘으로 연결돼, 리더들만 스스로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한다.
대기업들의 경제력 집중 현상이 주목을 받으며, 반독점 운동도 싹을 틔우고 있다. 우선, 기술 대기업들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상원의원 엘리자베스 워런 Elizabeth Warren부터 페이스북의 공동창립자 크리스 휴즈 Chris Hughes까지, 모든 이들이 올해 페이스북의 해체를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CVS도 완전히 끝났다고 볼 수는 없다: 정부가 CVS의 애트나 인수를 승인한 몇 달 뒤인 지난 4월, 연방 판사는 인수를 반대한 당사자들의 의견을 듣고 싶다고 결정했다.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사안이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