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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 사상 첫 '마이너스']"소비 위축...이미 디플레 진입" vs "유가급락·폭염 기저효과 탓"

"저물가·저성장 악순환 덥쳐

日 잃어버린 20년때와 비슷"

"농축산물 가격 하락 등 영향 커

내년 이후 1%대 올라설 것"

韓銀, 디플레이션 우려 일축





3일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 8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사상 처음으로 전년 동월 대비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은 국제유가 하락, 농축수산물 가격 급락 등 공급 측 요인에 유류세 인하 같은 정책 요인까지 더해졌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여기에 기록적인 폭염으로 지난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고공 행진했던 것까지 기저효과로 작용했다. 정부는 공급 측 요인이 8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전체적으로 0.74%포인트 끌어내린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소비자물가 상승률 0%대의 저물가 상황이 올해 1월부터 장장 8개월째 이어지면서 한국 경제가 장기적 경기침체 속에서 물가가 하락하는 디플레이션 국면에 진입한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고 있다. 공급 요인보다는 경기둔화에 따른 소비 악화 등 수요 측 요인을 마이너스 물가 상승률의 원인으로 보는 시각이다.

8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나온 이날 오전 정책당국인 기획재정부와 통화당국인 한국은행은 거시정책협의회를 개최했다. 김용범 기재부 1차관은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급격히 낮아진 것은 수요 측 물가 상승 압력이 낮은 상황에서 농산물과 석유류 가격이 하락하는 등 공급 측 요인의 일시적 변동성이 확대된 데 따른 것”이라고 진단했다. 수요 측 요인보다는 공급 측 요인이 크게 작용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양파·마늘 등 일부 농산물 작황이 호조를 보이면서 채소류 가격은 전년 동기 대비 17.8% 급락했다. 그 결과 전체 농축수산물 가격이 7.3% 하락했고 이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0.59%포인트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지난해 8월 배럴당 73달러였던 국제유가도 올 8월에는 59달러로 낮아져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0.15%포인트 하락시켰다. 그렇지 않아도 국제유가 하락으로 국내 기름값이 떨어진 마당에 정부가 유류세 인하 조치까지 취하면서 석유류 가격은 전년 동기 대비 6.6% 하락했다. 김 차관은 “농산물과 석유류 가격이 과거 3년 수준의 상승률을 보였다면 8월 물가 상승률은 1% 중반 수준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급 측 요인을 제거한 근원물가(농산물 및 석유류 제외지수)는 1년 전보다 0.9% 상승했다. 0%대이기는 하지만 앞선 5월 0.8%, 6월 0.9%, 7월 1.0%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오준범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근원물가 수준으로 봤을 때 8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마이너스를 나타낸 것은 공급 측 요인이 크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건강보험 확대 적용, 무상급식 실시 등의 복지정책도 상승률을 끌어내린 요인으로 지목된다.



기저효과도 작용했다. 지난해 8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4%를 기록했다. 이후 9~11월에는 2% 수준의 상승률을 보이기도 했다. 기록적인 폭염으로 농축수산물 가격이 급등했기 때문이다. 윤면식 한은 부총재는 “연말께 기저효과가 사라지고 내년 이후에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대로 높아질 것”이라면서 “디플레이션을 우려할 상황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한은은 국제통화기금(IMF)의 디플레이션취약성지수(DVI)가 올 1·4분기와 2·4분기 각각 0.18을 나타냈다는 점을 소개하며 디플레이션 가능성을 일축했다. DVI가 0.2보다 낮으면 디플레이션 위험도가 ‘매우 낮음’인 것으로 평가된다.

그럼에도 저물가 기조가 장기화함에 따라 디플레이션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올 1월부터 7개월 연속 0%대에 머물렀고 급기야 8월에는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최장 기간 0%대를 이어간 때는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이 창궐했던 2015년 2월부터 11월까지로 10개월 연속이었다. 정부는 공급 요인을 제거한 근원물가가 1% 안팎 수준을 유지했다고는 하지만 절대치 자체가 사상 최저 수준까지 떨어져 있다. 저물가가 지속되면 내수침체의 골이 더 깊어지고 소비 위축은 심화해 결국 기업이 투자를 줄이고 경제성장이 둔화하는 등 경기 악순환이 나타난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일시적인 공급 충격으로 판단하기에는 비교적 장기간 0%대 저물가가 이어지고 있다”면서 “경기침체에 따른 수요 부진이 마이너스 소비자물가 상승률에 결정적으로 작용했고 이미 디플레이션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진단했다. 성 교수는 “일본의 ‘잃어버린 20년’과 같이 장기침체 국면에 우리나라도 들어섰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세종=한재영기자 jyha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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