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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상 설계 미숙에 경험부족 겹쳐…죽음의 계곡 못넘는 K바이오

[심층진단-헬릭스미스 '엔젠시스' 3상 실패]

"약물 잘못 투여" 황당한 실수에

펙사벡·엔젠시스 등 줄줄이 좌절

"국내업체 임상역량 한계" 지적

'3상=주가호재'에 무리한 추진도

"기술수출 통해 경험 쌓아야" 봇물





‘인보사 사태’ ‘펙사벡 쇼크’ 등 줄줄이 이어지는 악재에도 K바이오가 마지막으로 희망을 걸었던 헬릭스미스(옛 바이로메드)의 당뇨병성 신경병증 치료제 후보물질 ‘엔젠시스(VM202-DPN)’의 미국 임상 3상이 ‘약물 혼용’이라는 이례적인 일로 사실상 실패했다. 헬릭스미스는 설명회를 열어 충격 진화에 나섰지만 이해할 수 없는 임상 실패 이유부터 희망 섞인 추가 임상계획까지 모든 것이 50일 전 신라젠이 면역항암제 ‘펙사벡’의 임상 3상 실패를 발표한 직후 열린 설명회의 데자뷔였다.

헬릭스미스는 24일 서울 여의도 NH투자증권 빌딩에서 임상 3상 약물 혼용 관련 설명회를 열고 엔젠시스의 임상 실패 이유와 향후 계획을 밝혔다. 김선영 헬릭스미스 대표는 이날 “엔젠시스를 투여한 환자 20명에게서 약물이 지나치게 적게 검출됐고 반대로 위약군 20명에게서 엔젠시스가 검출됐다”며 “혼용이 있는 데이터를 제거하고 분석했을 때 유의미한 결과가 나왔던 만큼 6개월 내 임상 3상을 다시 시작해 오는 2022년 2월까지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품목허가를 신청하겠다”고 해명했다.

헬릭스미스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잇따라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임상 3상에 실패하자 그 원인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임상 3상에 실패할 경우 1,000억원 이상의 비용이 날아간다. 바이오벤처는 회사의 존립마저 위태로워질 수 있는 만큼 실패 원인을 철저히 분석해 상용화 단계를 밟아나가야 한다는 지적이다. 업계 일각에서는 임상 실패의 원인으로 △임상 3상 설계의 미숙함 △근본적인 임상 역량의 한계 △주가 상승과 같은 가시적인 성과 등을 꼽는다.

올 들어 미국 FDA의 임상 3상에서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한 국산 신약 후보물질은 4개다. 에이치엘비의 위암치료제 ‘리보세라닙’, 신라젠의 면역항암제 ‘펙사벡’과 헬릭스미스의 당뇨병성 신경병증 치료제 ‘엔젠시스(VM202-DPN)’, 국내에서 시판됐던 코오롱생명과학의 골관절염 유전자치료제 ‘인보사케이주(이하 인보사)’ 등이다. 이들 모두 올 초까지만 해도 K바이오의 기대주로 꼽히던 신약 및 후보물질이었다.

업계는 이 네 물질 모두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임상 3상에 사실상 실패했다는 데 주목하고 있다. 김 대표는 24일 설명회를 열어 “전체 임상 시험 기관 중 20%에 달하는 5곳 정도 기관의 위약군(가짜약 투여)에서 엔젠시스가 검출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임상시험을 포함한 모든 과학적인 실험에서 일어날 수 없는 황당한 실수이고 글로벌 임상시험 기관 중 5곳이나 약물 투여를 잘못했을 가능성은 크지 않은 만큼 헬릭스미스의 임상 설계에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입을 모았다.



앞서 미국 임상 3상에 실패한 업체들의 사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신라젠의 면역항암제 펙사벡은 항암제의 임상 과정에서 당연히 고려돼야 할 타 항암제의 동시투여(구제요법) 때문에 임상 3상이 실패했다고 발표했고 에이치엘비의 ‘리보세라닙’은 첫 발표에서 임상시험을 다시 시작하겠다고 밝혔다가 이후 이를 번복하고 미국 품목 허가 신청에 나서는 등 납득하기 어려운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에 앞서 코오롱생명과학이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국내 품목 허가까지 받아낸 ‘인보사’는 미국 임상 3상 과정에서 성분이 당초 신고된 연골유래세포와 전혀 다른 신장유래세포라는 사실이 확인돼 미국 임상 3상이 중지되고 국내 품목 허가까지 취소됐다.

이 같은 초보적인 실수가 잇따르는 이유로 국내 업체들의 경험 및 역량 부족이 꼽힌다. 미국 임상의 경우 임상시험의 객관성을 위해 신약 개발사도 데이터에 접근할 수 없도록 한 FDA의 가이드라인이 있기 때문에 극히 사소한 부분까지 통계적 유의성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설계해야 한다. 하지만 글로벌 임상시험 경험이 부족한 국내에서는 이 같은 점을 크게 고려하지 않았다. 한 바이오벤처 대표는 “임상 2상 결과를 봤을 때 실험 설계만 제대로 했으면 지금보다 훨씬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것 같은 곳이 있다”며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의 경험 부족이 가장 큰 실패 원인”이라고 전했다.

이와 함께 임상 3상 진입이 투자자들이 만족할 수준의 주가 관리에 대단히 효과적인 재료라는 점도 국내 바이오벤처가 무리수를 두는 원인이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지적한다. ‘상용화’ ‘품목 허가 취득’ 같은 결과가 당장 드러나는 게 아닌 만큼 ‘기대심리’만으로도 주가는 급등한다. 이때 일부 자금을 회수하면 상당한 수익을 실현할 수 있다. 임상 3상 실패 발표 전 헬릭스미스와 신라젠의 시가총액은 코스닥 2위까지 올라갔고 코오롱생명과학과 메지온 역시 1조원이 넘는 시가총액을 자랑했다.

이 때문에 바이오벤처 자체 역량을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쏟아지고 있다. 특히 무리하게 독자적으로 임상 3상에 진입하기보다는 기술수출 등을 통해 글로벌 제약사와 임상 3상 경험을 쌓은 다음 자체 임상 3상에 진입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한 바이오벤처 대표는 “바이오벤처의 본분이 연구개발(R&D)이라지만 회사가 존속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진행해야 한다”며 “글로벌 제약사들이 보기에 괜찮은 물질이라면 임상 2상 이전에 괜찮은 기술수출 제안이 들어오는 만큼 선택과 집중 전략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우영탁기자 ta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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