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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아편과 깡통의 궁전]'동남아의 진주' 페낭섬에 숨겨진 아픈 역사

■ 강희정 지음, 푸른역사 펴냄

[책꽂이-아편과 깡통의 궁전]'동남아의 진주' 페낭섬에 숨겨진 아픈 역사

1786년 8월 ‘사실상 무인도’였던 페낭에 영국이 깃발을 꽂았다. 실제 사람이 살지 않는 섬은 아니었으나 영국은 교묘하게 페낭을 ‘접수’했다. 페낭은 말레이반도 서북부의 작은 섬으로, 말라카 해협 북단에 자리 잡고 있다. 인도 경영에 주력해온 영국은 말라카 해협에서 남중국해에 이르는 교역로에 거점을 확보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페낭이 필요했다. 무관세 자유무역항으로 페낭은 성장했다. 페낭에 대한 영국의 관리는 다소 느슨했다. 페낭 정부는 중국 술 아락, 아편 등 특정 품목의 독점판매권을 팔았는데, 이를 이용한 발빠른 중국인들이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화교를 가리키는 ‘화인(華人)사회’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중국인들은 페낭의 주역이 됐다. 페낭의 화교는 ‘페라나칸’이라 불린다. 말레이어로 ‘현지에서 태어난 자’라는 뜻이다.

새 책 ‘아편과 깡통의 궁전’은 1786년부터 1930년대 말까지 페낭섬이라는 독특한 시공간에서 생겨난 화인사회에 관해 아편,주석,고무를 키워드로 짚어보고 있다. 흔히 ‘동남아에서 중국계의 영향력이 강하다’는 것을 얼핏 알고 있을 뿐 그 배경과 역사에 대해 우리 시각으로 분석한 책이 드물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페낭이 각광받은 이유는 깡통 때문이다. 철판 안팎에 주석을 입힌 양철통이 통조림 제조에 사용되고, 특히 통조림이 군용 식품으로 유용했기에 수요가 늘었다. 주석은 태국 푸껫에서 말레이반도 서안의 페라크와 슬랑오르, 수마트라의 방카섬으로 띠처럼 이어진 말라카해협 일대의 ‘주석벨트’에서 대규모로 생산됐다. 페낭은 깡통 생산기지로 급부상했다. 페낭의 중국인 자본이 주석벨트로 몰려들었고, ‘백색 황금’이라 불린 주석을 좇는다 하여 ‘백색 골드러시’라 칭했다.

표제에도 등장하는 ‘아편’의 경우 페낭은 아편교역항일 뿐만 아니라 생아편을 흡입용 아편(찬두)으로 만드는 재가공시설까지 갖추고 있었다. 동남아 아편경제의 중심지였고, 일부 엘리트 화인들은 영국의 ‘아편식민지배’를 통해 쏠쏠한 이득을 봤다.

명암은 공존한다. 주석 특수를 노려 페낭으로 온 중국인 노동자 ‘쿨리’의 삶이 그 어두운 면이다. 이들은 섬으로 오기 위해 빚진 뱃값에 허리가 휘었고 뙤약볕 아래 고된 노동을 위로하는 아편의 유혹에 놓였다. 외딴 숙소에 머무는 광부 쿨리는 부자들이 독점 운영하는 ‘광산매점’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는데 여기 매대에는 늘 아편이 있었다. 쿨리에게 아편은 일종의 ‘노동 마약’이었다. 반면 주석과 아편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페낭의 부자들은 호화로운 대저택과 사찰을 세웠다. 20세기 초기 빛을 발한 페낭의 ‘벨 에포크’를 저자는 ‘아편과 깡통의 궁전’이라 이름붙였다.

동남아 여행지로 흔히 알려진 페낭을 다시 보게 만드는 책이다. 미술사학자인 저자는 페라나칸 미술을 연구하던 중 우연찮게 ‘외도’같이 이 책을 썼다. 그는 “기존의 동남아 화인 연구가 엘리트의 욕망에 초점 맞췄다면 이 책은 숱한 밑바닥 삶까지 들춰봤다”며 “페낭 화인사회의 역사적 경험은 정부가 천명한 신남방정책을 구체화하고 현지로 다가가는 외교적 노력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2만8,000원.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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