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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恨 풀려 공부했죠"…수능시험장 찾은 여성 만학도들

■서울 서대문구 이대부고 앞 스케치

일성여고 3학년생들 137명 수능 치러

교장·교사도 1·2학년생들과 함께 응원

"아들 고3때 생각나…수능보게돼 감격"

서울 마포구 일성여·중고 계단에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의미의 영어 문구가 부착돼 있다. 일성여·중고는 공부할 기회가 없었던 여성 만학도들을 위한 학교다. /이희조기자




“오늘 수능을 본다는 게 감격스럽습니다. 이 나이에 이렇게 수능을 보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일성여자고등학교 3학년생 하정순(73)씨는 14일 오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치르기 위해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사범대학 부속 이화금란고등학교에 마련된 고사장을 찾았다.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일성여중과 일성여고는 각각 2년제 학력인정 주부학교로, 배움의 기회가 없었던 ‘여성 만학도’들을 위한 학교다. 두 학교에서는 16개월차 이상 학생들이 3학년, 8개월차 이상 학생들은 2학년, 그 외 학생들은 1학년이다. 하씨는 “날이 추운데도 불구하고 응원하러 나와준 후배들과 선생님들께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날 일성여고 1·2학년생들은 이른 오전부터 이대부고 정문 앞에서 ‘엄마의 꿈을 응원해’, ‘여보, 등록금 준비해’ 등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수능을 보는 3학년생들을 응원했다. 이들은 “엄마도 대학 간다 일성여고 파이팅”, “수능시험 잘 보세요 일성여고 파이팅” 등 응원 구호를 외치며 교문으로 들어가는 수험생들에게 따뜻한 차를 나눠줬다. 이날 수능에 응시하는 일성여고 3학년생 137명 중 이대부고에서 시험을 치르는 28명은 후배들의 응원을 한몸에 받으며 고사장으로 들어갔다.

14일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르는 일성여고 한 3학년생이 후배들의 응원들 받으며 고사장인 서울 서대문구 이대부고로 들어가고 있다. /이희조기자


이번 일성여고 수능 응시생 중 최고령인 3학년생 오규월(78)씨는 “아들이 고3이었을 때 생각이 난다”며 “잠이 안 와서 한숨도 못 잤지만 평소처럼 열심히 시험을 볼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3학년생 김송자(60)씨도 “열심히 공부해온 만큼 문제를 열심히 풀어 수능을 잘 보겠다”는 포부를 밝히며 고사장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날 일성여중·고 교장도 응시생들을 응원하기 위해 이대부고를 찾았다. 교장 이선재(83)씨는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공부할 기회를 갖지 못했던 여성이 많다”며 “‘무학자’가 한 명도 없는 세상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학교를 운영 중”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일성여중·고 학생들은 공부를 하지 못한 것이 한이고 설움이었던 분들”이라면서 “다들 힘들다는 생각 없이 재미있고 행복하게 공부를 해왔으니 시험도 잘 볼 것”이라고 덧붙였다.



학교에 따르면 일성여고는 14년 동안 졸업생 전원이 대학에 합격했다. 일성여고생들은 주로 평생학습자전형 등 만학도를 위한 수시전형으로 대학에 원서를 낸다.

14일 일성여고 교장 이선재(83·오른쪽에서 네 번째)씨와 1·2학년생들이 3학년생 일부가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르는 서울 서대문구 이대부고 정문 앞에서 수험생들을 응원하고 있다. /이희조기자


일성여중·고는 서울에 있지만 재학생들은 서울뿐 아니라 경기, 세종 등 다양한 지역에 거주하고 있다. 학교 관계자는 “사는 곳이 학교에서 멀어도 공부에 대한 열정은 그보다 더 강하기 때문에 타 지역에서도 등교하는 분들이 많다”고 말했다.

재학생들은 개교기념일마다 100여명이 공동집필해 책을 내기도 한다. 일 년 동안 학교에서 쓴 글 중 의미 있는 글을 모아 출판하는 것이다. 올해는 32번째 책 『행복한 외출, 학교가 즐겁다』가 출판됐다.
/이희조기자 lov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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