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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점]美 실리콘밸리 성공은 'IP의 힘'…韓은 부처 이기주의에 발목 잡혀

■지식재산 총괄 기관 왜 필요한가

4차산업혁명시대, 다양한 분야서 융복합 활발한데

문체·농식품·특허청 등 업무 분산 'IP보호' 불가능

IP 총괄 부처·靑 보좌관 등 컨트롤타워 만들어

중복 투자·연구 막고 유연하고 효율적으로 대응을





몇 년 전 ‘포켓몬고’ 열풍이 전 세계를 강타했다. 포켓몬고는 사람이 실제 밖을 걸어 다니면서 스마트폰으로 증강현실(AR) 기술이 적용된 포켓몬을 잡는 게임이다. 출시 이후 지난해 상반기까지 누적 매출액 25억달러(약 3조원)를 돌파했는데, CNN은 일본의 비디오게임 역사상 가장 중요한 발명 중 하나로 포켓몬고를 꼽았을 정도다. 주목할 대목은 닌텐도의 자회사인 포켓몬컴퍼니 소유의 저작권과 상표권, 구글에서 분사한 나이언틱랩스의 증강현실 특허권 등 각각의 지식재산권을 융합해 새로운 지식재산권처럼 사용했다는 점이다. 독점적 성격의 지식재산권과 기술, 문화 간 융합을 통해 엄청난 규모의 부가가치를 창출했다.

정보기술(IT) 강국인 우리나라에서는 왜 포켓몬고 같은 성공신화를 만들 수 없었을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지식재산(IP) 컨트롤타워의 부재가 대표적인 걸림돌 중 하나로 지목된다. 지식재산은 특허·상표·디자인·저작권 등으로 구성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다양한 지식재산이 융복합을 거치면서 엄청난 속도로 사회 전반을 변화시킨다. 특정 플랫폼이나 국제표준을 선점하면 후발 기업과의 격차가 확대되면서 승자독식이 고착화된다. 승자독식 시대에는 플랫폼과 국제표준을 선점할 무기, 즉 얼마나 창의적인 지식재산을 확보하느냐가 승패를 결정한다.



◇1차 산업혁명 꽃피운 특허의 힘

가장 기본적 지식재산인 특허의 개념은 15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탈리아 북부의 작은 국가인 베네치아는 다른 나라보다 먼저 발명의 중요성을 인식했다. 지난 1474년부터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이 일정 기간 독점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했다. 수많은 발명가가 베네치아로 몰려들었고 베네치아는 가장 융성한 도시국가로 거듭났다. 발명가를 보호하는 베네치아의 문화를 이어받은 나라는 영국이었다. 1624년 영국은 ‘특허(patent)’라는 형태로 발명가에게 독점권을 주기 시작했다.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에게 경제적 보상까지 약속한 셈이다. 수많은 특허가 쏟아지던 1769년 제임스 와트는 인류사에 남을 특허를 따냈다. 증기기관에 관한 특허로, 1차 산업혁명의 씨앗이 탄생한 역사적 순간이었다.

◇실리콘밸리 초석 마련한 ‘강한 특허’

미국은 1787년 건국 헌법에 특허 보호를 명시하고 강력한 특허제도를 펼쳐왔다. 하지만 20세기 중후반에 접어들면서 위기에 직면했다. 1980년대 미국 시장에는 일본 제품이 넘쳐났고 수많은 맨해튼 빌딩이 일본 자본에 넘어갔다. 급기야 재정과 무역의 쌍둥이 적자까지 떠안으면서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는 ‘강한 특허’로 승부수를 던졌다. 특허청의 위상을 강화하고 통상법 슈퍼 301조로 지식재산권 보호가 미흡한 국가의 수입품에 보복조치를 취했다. ‘강한 특허’ 정책에 힘입어 IT가 발전했고 전 세계에서 창업을 꿈꾸는 젊은이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미국정책재단(NFAP)의 통계(2016년 기준)에 따르면 자산가치가 10억달러를 넘는 스타트업 가운데 절반 이상이 이민자들이 세운 회사다. 테슬라(일론 머스크·남아프리카공화국), 구글(세르게이 브린·러시아), 인텔(앤드루 그로브·헝가리), 야후(제리 양·대만) 등이 대표적이다. 애플이나 아마존 같은 글로벌 기업들의 가치는 부동산 등 유형자산이 아니라 특허·디자인·상표 등 무형의 지식재산으로 결정된다.

연간 500조원 규모로 성장한 전 세계 지식재산 시장은 일자리는 물론 경제성장을 견인하는 가치창출의 원천이다. 양적인 면에서 보면 우리나라는 세계 수준에 올라 있다. 미국·유럽·일본·중국 등과 함께 ‘세계 지식재산 5대 강국’에 속한다. 1977년 2만5,000여건에 불과했던 산업재산권 출원 규모는 50만건에 육박하고, 특허협력조약(PCT)을 통한 국제특허출원 순위도 5위를 차지한다. 인구 100만명당 특허출원 건수로는 세계 1위다. 하지만 질적인 면에서 보면 가야 할 길이 멀다. 최근 미국 상공회의소 산하 글로벌지식재산센터(GIPC)가 발표한 국제지식재산지수 조사에서 우리나라는 41.10점(50점 만점)으로 53개국 중 13위에 그쳤다. 미국·영국 등 지식재산 컨트롤타워를 둔 국가들이 톱3를 차지한 것과 비교하면 턱없이 낮다.

◇기술융합시대, IP정책도 융합 전략 필요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소프트웨어를 CD로 무단 유통하면 특허침해에 해당되지만 온라인으로 전송하면 권리를 보호받지 못했다. 온라인 전송을 특허로 보호하기 위해 특허청은 2005년부터 법률 개정을 시도했다. 하지만 문화체육관광부와의 갈등으로 번번이 무산되다가 올해 3월11일부터 개정안이 본격 시행됐다. 소프트웨어 불법복제는 2016년 3,448건에서 2018년 1만3,579건으로 4배나 급증하면서 실질적으로 권리를 보호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몇 년 전 전남 광주에서 유명 캐릭터 짝퉁 인형을 대량 제작해 적발된 A사 대표는 상표권 특별사법경찰(특허청)과 저작권 특별사법경찰(문체부)로부터 각각 조사를 받았다. 특허청은 상표법 위반 혐의로, 문체부는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단속해 이중으로 고충을 겪었다.

올 2월 문체부가 발표한 ‘저작권 비전 2030’을 살펴보면 한계가 여실히 드러난다. 문체부는 콘텐츠가 국가경쟁력을 좌우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저작권 강국이 되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하지만 콘텐츠를 보호하고 육성하기 위해서는 저작권은 물론 상표권 확보와 위조상표 단속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콘셉트가 유사하다고 판단되더라도 똑같이 베끼지만 않으면 저작권 침해로 판단하지 않는 등 태생적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왜 이런 문제가 발생할까. 여러 부처로 흩어진 지식재산 행정체계 탓이 크다. 특허와 상표·디자인 등을 관장하는 특허청과 저작권 업무를 맡고 있는 문체부, 지리적 표시 등을 챙기는 농림축산식품부, 지식재산기본법을 담당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으로 나뉘어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5세대(5G) 이동통신,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의 기술이 급속히 발달하기 때문에 특정 권리만 보호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 각각의 지식재산에 대한 중복 투자 및 중복 연구로 한정된 자원이 낭비될 뿐 아니라 지식재산 전략이 정교하지 못하고 법 집행에도 시간이 걸려 국민의 불편을 가중시킨다. 전문가들은 특허·상표·디자인·저작권 간 경계가 모호해지는 만큼 제품이나 서비스 단위로 접근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기술 융복합 흐름에 유연하면서도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강력한 컨트롤타워가 요구되는 배경이다. 다보스포럼의 창시자 클라우스 슈바프는 4차 산업혁명의 성공 요건으로 강력하면서도 유연한 지식재산 제도를 꼽았을 정도다.

이제라도 부처별로 쪼개진 지식재산 업무를 조율하고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컨트롤타워를 마련해야 한다. 분산된 지식재산 정책을 총괄할 전담기관을 두는 한편 미국처럼 대통령을 보좌하는 지식재산수석비서관을 두는 방안도 고려할 만하다. 더 나아가 연구개발부터 창업·생산·소비·유통·자산관리에 이르기까지 산업활동과 관련된 사고방식을 지식재산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 혁신성장의 상징인 실리콘밸리가 200년 넘게 일관되게 지켜온 지식재산에 대한 미국의 고집과 집념이 낳은 결실이라는 사실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정민정 논설위원 jminj@sedaily.com

<소박스> 해외에서는 어떻게 하나

미국·영국·중국 등 주요국은 경제성장 기반이 되는 지식재산을 선점하기 위해 범국가 차원의 역량을 집중시키고, 최고통치권자 직속의 지식재산 거버넌스를 구축·운영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 2008년 백악관 관리예산처에 지식재산집행조정관(장관급)을 설치해 지식재산 정책과 산업 로드맵을 제시하면서 부처별 업무를 조율하고 있다. 미국의 특허상표청은 특허와 상표를, 저작권청은 저작권을 담당하고 있다. 영국은 2007년 특허청을 지식재산청으로 확대 개편하면서 특허·상표·디자인과 같은 산업재산권과 저작권 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캐나다와 러시아 등도 지식재산청을 설치해 특허·상표·저작권 등 지식재산 정책을 지휘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특허·상표는 특허청이, 저작권은 문화청이 관장한다. 하지만 일본도 2003년 총리 직속의 지적재산전략본부를 설치해 실질적인 지식재산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기고 있다. 중국은 1998년 국무원 소속으로 국가지식산권국을 창설해 지식재산 정책을 총괄하고 있다. 2017년 리커창 총리가 ‘지식재산권 종합관리계획’을 발표한 후 국무원은 ‘지식재산 강국 건설 가속화 계획’을 내놓을 정도로 공격적 행보를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는 2011년 지식재산기본법을 제정·시행하면서 대통령 직속 ‘국가지식재산위원회’를 설치했고 5년마다 ‘국가지식재산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하지만 산업재산권과 저작권 업무 등이 여러 부처로 분산된 탓에 지식재산 정책의 전체 밑그림을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세부과제를 추진하는 데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요구하는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지식재산 정책을 강력하게 펼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20대 국회 후반기 홍의락·김민기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특허청을 ‘지식재산혁신청(가칭)’으로 확대·개편하는 것을 골자로 한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 주목할 만하다. 민주당이 혁신성장을 총선 공약의 전면에 내세운 21대 국회에서 지식재산 거버넌스가 제대로 구축될지 지켜볼 일이다.

정민정 논설위원 jminj@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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