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현지시간)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사우디 국부펀드(PIF)가 지난 몇 주 동안 유럽 4개 주요 정유사 지분을 총 10억달러(약 1조2,200억원)어치 사들였다고 보도했다. 정유사 4곳은 노르웨이 에퀴노르, 네덜란드 로열더치셸, 프랑스 토탈, 이탈리아 에니다.
월가에서는 유가 급락으로 정유사 주가가 떨어진 와중에 PIF가 지분을 사들인 데 주목하고 있다. 브렌트유 가격이 반토막 나면서 셸은 올 들어 8일까지 주가가 35%나 떨어졌다. 에니는 33%, 토탈은 31%, 에퀴노르는 23% 각각 하락했다. 이 때문에 러시아와 증산전쟁을 벌여온 사우디가 코로나19에 따른 원유 수요 감소의 후폭풍을 고려한 행보에 나선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된다. 감산 논의 과정에서 오일 업계에 대한 영향력을 높이기 위한 포석일 가능성도 거론된다. 실제 사우디는 9일 긴급 화상회의에 앞서 산유량을 하루 400만배럴 줄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고 로이터통신이 사우디 내부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로이터통신은 “사우디가 준비한 원유 감산량은 일일 400만배럴이지만 감산의 기준은 사상 최대 산유량을 기록한 4월 산유량인 일일 1,230만배럴”이라고 전했다.
사우디와 증산전쟁을 벌이고 있는 러시아도 감산 가능성을 시사했다. 타스통신에 따르면 러시아는 주요 산유국들의 감산 합의를 전제로 자국의 원유 생산량을 하루 160만배럴 감산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다만 코로나19로 인한 수요 감소를 감안할 때 감산 규모가 부족할 수 있어 산유국들이 감산을 결정한다고 해도 저유가 기조가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는 회의론은 여전하다.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는 “4월 석유 소비는 한 세기 동안 보기 어려울 정도로 줄 것으로 전망된다”며 “산유국의 합의에도 불구하고 그 효과가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기혁기자 coldmeta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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