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차·조선 부품 만들던 자리엔 '돈 되는' 마스크 공장만

[산업단지의 절규]

차·조선 부품 만들던 자리에 '돈 되는' 마스크공장만

최저임금 부담 못 견뎌 '가족끼리 때우는' 업체 수두룩

은행 대출도 바닥...이대로면 9월까지 생존 장담 못해

경상남도 양산시 어곡산업단지에 위치한 한 금속제조 공장의 철문이 평일인 3일 낮에도 굳게 닫혀 있다. 일대 공장은 코로나19 사태로 일감이 없어 공장을 4일만 열거나 직원을 주 3·4일제로 출근시키면서 버티고 있다. /이재명기자




경남 양산 산업공단에서 가장 규모가 큰 어곡 산단에 위치한 자동차 부품업체 삼정CT. 차에 들어가는 내장재 부직포를 만드는 이 회사는 이번 달 일감이 전년 대비 70%나 줄었다. 공장 가동률은 30%를 간신히 넘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사실상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는 표현이 무리가 아니다. 이 회사의 이모 사장은 “지난 5월부터 전체 직원 30명 중 절반은 무급휴가로 돌리고 나머지 직원으로 하루 8시간만 일하며 버티고 있다”며 “미국·남미·유럽 할 것 없이 국내 완성차 수출이 죽을 쑤고 있어 묘책이 없다”고 토로했다. 그는 “은행 대출금 3억원은 운전자금으로 다 빠져나갔고 일감도 급감해 회사 문을 닫고 싶은 심정”이라며 “이대로라면 오는 9~10월이 고비가 될 거 같다”고 말했다.

삼정CT의 현실은 국내 주력산업 생태계가 밑동부터 흔들리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양산 산업단지는 1997년 IMF 외환위기를 이겨낸 기업들이 중심이 돼 2000년에 만들어져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도 거뜬히 버텼는데 코로나19로 생존 시험대에 올랐다는 말까지 나온다. 자동차·조선·가전 등 국가 경제를 뒷받침하던 부품업체가 하나둘 쓰러져간 자리에는 아이러니하게도 로테크로 치부하던 마스크 공장이 들어서고 있다. 공단에서 조선 부품사를 운영하는 한 최고경영자(CEO)는 “1980년대 양산 공단이 조성된 후 요즘이 최고 위기”라며 “주위를 둘러보면 마스크 공장만 바쁘다”고 허탈해했다.

◇일감 쪼개며 버틴다지만…한계 상황 직면한 산업 생태계

주력 산업 생태계의 붕괴는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 전국 산업단지의 4월 수출(95억2,900만달러)과 생산(35조1,848억원)은 전달 대비 각각 35.2%, 12.9% 줄었다. 현대차에 납품하는 부품사와 현대중공업 관련 조선기자재 업체가 포진한 울산·미포 공단의 경우 수출이 58.5% 감소하는 등 주력산업 부품사들이 밀집된 공단일수록 타격이 심하다. 설상가상 5월 이후 실적은 더 나빠질 게 확실하다. 최근 세계적으로 코로나19 확산세가 불붙으면서 원청업체 격인 대기업 실적이 바닥을 기고 있기 때문이다.

양산에서 만난 부품업체들도 난맥상에 허덕이는 모습이 역력했다. 금속 파이프를 정밀 가공해 주로 해외에 납품하는 신성정공은 10대 설비 중 고작 2대만 돌리고 있다. 일감이 태부족이다 보니 평소 같으면 2주 만에 끝날 일을 한 달을 꽉 채워 마감하는 실정이다. 기계설비업체인 동호산업도 80명의 직원을 3교대로 4일씩 출근시키고 있다. 공단 입주 업체의 한 관계자는 “직원 중 절반을 휴직시키고 설비를 조금씩 돌리며 버티는 곳과 주 3~4일 근무하고 금요일은 아예 일찍 문을 닫아버리는 곳 등 두 부류로 나뉜다”고 말했다.





◇축소경영, 가족경영 팽배…마스크 공장만 활황

현실과 유리된 정책도 중소기업의 숨통을 옥죄고 있다. 인건비 때문에 직원 대신 가족으로 ‘때우는’ 업체가 수두룩했다. 어곡 산단 내의 한 업체 사장은 “최저임금이 워낙 올라 직원은 최소로 출근시키고 사장 혼자나 부부끼리 밤늦도록 일하는 곳이 많다”고 전했다. 다른 업체 사장도 “코로나19로 대출금리 1.8%로 10억원을 대출받았다고 치면 1년에 낼 이자가 연 1,800만원이나 되는데 한사람 연봉은 된다”며 “사람을 내보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여기에 외국인 인력은 ‘밑 빠진 독’ 같은 존재로 전락했다. 한 업체 관계자는 “야근이나 주말 특근을 시키려고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했는데 난감하다”며 “숙식까지 제공하는 판이라 한숨밖에 안 나온다”고 읍소했다.



모두 축소경영에 혈안이지만 마스크 업종만 딴판이다. 최근 서너 달 새 새로 생긴 업체가 10여개에 이른다. 마스크가 생필품이 되면서 어쩔 수 없는 현상이지만 산업 밸류에이션 차원에서 바람직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공단 내의 한 업체 관계자는 “마스크 업체 중에는 폐업 상황이던 다른 공장 부지를 사들여 한 달 만에 공장 매입 비용을 벌어들였다는 곳도 나오고 있다”며 “자연스럽게 정리되기까지 이런 추세가 이어질 것 같다”고 말했다.

◇9~10월 위기설 파다…옥석 가려 재정 투입해야

중소기업계에는 9~10월 위기설이 나돈다. 상반기 정책자금의 약발이 끝나고 가을이면 금융권 만기상환연장(롤오버) 조치도 무작정 기대하기 어려운 탓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기업 옥석 가리기를 통해 기업 정리 작업에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이사는 “시장에서 자생력이 떨어지는 업체가 조만간 나타난다”며 “좀비 기업을 솎아낼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가이드라인 마련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가령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규모의 경제가 가능한 곳, 현금 흐름이 그나마 나은 기업을 상대로 한시적으로 정책자금을 투입할 수 있을 것”이라며 “구조조정 없는 무차별 지원은 청년층 일자리 문제를 심화시키고 소비 기반도 약하게 만들어 산업 생태계를 안으로부터 곪게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도 “금리를 낮추는 통화정책과 별개로 재정 투입은 선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며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는 만큼 재난지원금과 같은 원샷 지원을 남발해서는 안 된다”고 꼬집었다. /이상훈기자 양산=이재명기자 shlee@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