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통합당이 13일 내놓은 새 정강정책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과감한 환골탈태’다. 이날 발표한 초안에 “국가는 국민 개인이 ‘기본소득’을 통해 안정적이고 자유로운 삶을 영위하도록 적극적으로 뒷받침하여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한다”는 문장을 가장 앞에 명시했다. 지난 2월 황교안 전 대표 체제에서 만들어진 정강정책의 ‘미래세대에 부담을 전가하지 않는 생산성을 높이는 맞춤형 복지’에 비하면 통합당의 태도가 180도 바뀐 셈이다. 더 나아가 정강정책에는 “개인의 이익을 넘어선 공공의 선이 존재한다”는 국가 개입까지 명시됐다. 이에 당 안팎의 우려가 적지 않다. 특히 상당수 의원들이 “자유시장과 개인의 자유를 중심으로 하는 통합당의 정통성과 맞지 않는다”며 반발하고 있어 새 정강정책이 최종 관철되까지는 상당한 내홍을 겪을 전망이다.
◇“뼛속까지 달라져야” 대변화 선택=통합당의 새 정강정책 첫 조항에는 ‘기본소득’이 명시됐다. 진보진영에서도 꺼리던 기본소득을 제일 처음 정강정책에 내놓을 만큼 통합당이 완전히 새로운 정체성을 들고 나온 것이다.
통합당의 좌클릭은 우리 사회의 주류가 된 중도층과 3050세대의 마음을 겨냥한 것이다. 새 정강정책에는 기본소득에 더해 노동존중 사회를 명시하고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청년고용 증대를 위한 노동시장 개혁은 물론 국회의원 4연임 금지, 지방의회 청년 의무 공천, 주요선거 피선거권 연령(만 25세) 만 18세로 인하 등을 담아 과감한 좌클릭을 택했다. 이에 더해 친환경사회 구현, 초고령사회 진입에 대비한 계속고용제도 확립 등도 명시했다. 또 장관급 국무위원은 남녀 비율을 동수로 하는 양성평등 정책도 추진한다.
전국 정당으로서 명예를 회복해 정권을 되찾기 위한 ‘호남 껴안기’도 정강정책에 명시된다. ‘우리는 갈등과 분열을 넘어 국민통합을 위해 노력하며 진영 논리에 따라 과거를 배척하지 않는다’는 문장이다. 이는 ‘5·18 민주화 운동’ ‘6·10 항쟁’ 등 민주화 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것이다. 이 밖에 총선에서 ‘막말’로 훼손된 ‘보수의 품격’을 회복하기 위한 “우리는 권위주의를 거부한다”와 “정치가 정직하고 겸손해야 한다고 믿는다”는 말을 이날 정강정책 개정안 보고문에 넣었다.
새 정강정책은 4·15 총선의 참패 원인을 곱씹은 일종의 ‘징비록’이라 할 수 있다. 이날 통합당은 새 정강정책 발표와 동시에 107쪽에 달하는 총선백서를 통해 처절한 반성을 기술했다. 전국, 전 세대, 남녀를 가리지 않고 국민들을 면접하고 전문가들의 의견을 담은 총선백서는 통합당에 대해 “정부의 실책에만 기대 정권 심판에 몰입하고 국민들을 위한 현실정책은 내놓지 못했다. 그냥 기득권층으로 자기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다투는 정당이라는 인식을 감출 수 없다”고 질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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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강정책은 정당의 유전자라는 점에서 보면 통합당은 확실히 중도를 넘어 진보의 가치를 들었다. 대선 승리를 위해서는 중도층을 껴안아야 한다는 것이다. 통합당 당헌 제8조는 ‘대통령에 당선된 당원은 당의 정강·정책을 충실히 국정에 반영한다’고 명시돼 있어 차기 대선 후보자는 새 정강정책을 따라야 한다. 총선백서제작특별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았던 신율 명지
대 교수는 “극렬한 보수층보다 주류가 된 중도층을 껴안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당 정통성 버린 ‘포퓰리즘’ 반발”도=다만 새 정강정책이 당의 새 정체성으로 뿌리내릴 지는 미지수다. 정강정책을 관철하려면 의원총회를 거쳐 상임전국위원회와 전국위원회의 추인을 얻어야 한다. 비대위가 밀어붙인다고 될 일이 아니다. 당원들이 받아들이지 못하면 당의 새 정체성이 될 수 없다. 벌써 정강정책에 담은 ‘국회의원 4연임 금지’부터 파열음을 내고 있다. 어떻게 금지할지 세부적인 내용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지만, 지역구 이동과 비례 당선 횟수를 따지지 않고 소급해 4연임을 못하도록 한다고 가정한다면 현재 5연임을 한 주호영 원내대표, 조경태 의원 등 당내 중진부터 자리를 내려놔야 한다.
무엇보다 ‘기본소득’, ‘시장에 대한 개입’을 명시한 부분은 논란이 예상된다. 통합당은 헌법상 보장된 사유재산과 개인의 자유에 기반한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가 당의 뿌리다. 새 정강정책은 뿌리 자체를 흔들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의원은 “초선과 외부 인사로 채워진 특위가 꾸려질 때부터 당내 중진들이 참여해 정통 보수의 가치는 지켜야 하지 않느냐는 의견들이 나왔다”면서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대한민국을 만든 정통 보수정당의 가치마저 폐기해야 하는지에 대해 소속 의원들은 물론 원로들의 고견을 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경우기자 bluesquar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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