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이도다완’이라 불리는 ‘정호다완(井戶茶碗)’은 14~16세기 우리 땅에서만 만들어진 전설의 찻사발이다. 막사발과 혼동해 부르는 경우도 있지만, 임진왜란 이후인 17~19세기에 제작돼 서민들이 사용했던 도자기를 일컫는 막사발과는 엄연히 다르다. 임진왜란을 전후해 일본으로 간 조선의 도공들은 조선에서와 달리 기술직으로 존중받는 일본에 눌러앉은 경우가 많았다. 그 바람에 조선에서는 왕실조차 도자기를 구하지 못해 목기에 흰 칠을 한 제기를 썼을 정도로 도공이 귀해졌다. 결국 조선에서는 정호다완의 명맥이 끊겼고 오히려 일본이 그 전통을 잘 받든 역설적 상황이 생겨났다.
도예가 김종훈(48)은 “다완이 처음 작업이자 마지막 작업”이기를 바라는 도공 같은 이다. 그는 기술과 그 결과물로 찻사발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옛 도공과 다인(茶人)의 생활을 이해하고 나의 것으로 체화”하는 과정을 통해 공감대가 형성돼야 비로소 다완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15년 간 일본을 수십 차례 드나들면서 일본 국보로 지정된 약 20여 점의 다완과 민간 유력인들이 소장하고 있는 300여 점의 다완들을 하나하나 찾아다녔다. 본 것을 내면으로 녹이고 이해해야 작업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국 도예의 맥을 이어온 김종훈이 최근 3년간 작업한 다완 78점과 백자 대호 6점이 ‘진짜’ 조선시대 다완 3점, 달항아리 1점과 함께 놓였다. 종로구 삼청로 학고재갤러리에서 25일 개막한 ‘춘추4-황중통리 김종훈 도자’ 전시를 통해서다.
‘황중통리(黃中通理)’는 주역 곤괘에 적힌 땅의 아름다움을 일컫는 말이다. 땅의 색인 ‘황중’은 내면의 응축된 황색을 뜻하는데, 황중통리는 내면의 아름다움이 외면과 행동으로 확장된 경지를 일컫는다. 작가가 갈고닦은 생각의 깊이는 작품에 그대로 투영됐다. 석열과 빙열, 유약의 뭉침까지 고스란히 정호다완을 재현했지만 겉만 흉내 내지 않았다. 편히 모양 빚을 수 있는 현대의 찰진 흙이 아니라 산에서 직접 캐어 7~8년 숙성시킨 흙으로, 자연적 풍화를 거쳐 얻은 귀한 유약으로 그릇을 빚었다. 일본인들이 정호다완을 재현하기 위해 조선의 흙과 나무, 물까지 가져다 다완을 만들며 “불(火)만 빌려온 사발”이라고 했던 것을 마음에 새겼다. 김 작가는 여기에 정신성과 기다림을 더했다. “정호다완 중에서도 지름 15.5㎝ 내외의 대정호는 옛 일본 무사들이 전쟁 나가기 직전에 어쩌면 마지막일지 모를 목숨 같은 차 한잔을 나눠마시던 찻사발이었습니다. 분인다완은 백자를 분청한 찻사발인데, 그릇 몸체를 이루는 흙과 분장토의 수축 정도가 달라 생겨나는 미묘한 색의 변화가 마치 사람과 시간이 그려낸 문양 같은 것이지요.”
인간과 시간이 함께 빚은 작품전은 다음 달 27일까지 열린다. 지난 1988년 개관한 학고재는 ‘옛 것을 배워 새것을 창조한다’는 뜻의 논어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에서 따온 이름처럼, 전통을 현대미술의 어법으로 해석한 작가들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선보여 왔다. 2010년에 첫선을 보인 ‘춘추’는 오늘날 미술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고미술 작품과 나란히 선보이며 학고재의 대표 기획전으로 주목받았고, 이번이 그 4번째 전시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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