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차와 장갑차, 어느 게 빨리 나왔을까. 등장 무대는 제 1차 세계대전으로 동일하지만 시간대는 후자가 앞선다. 1916년 9월 솜 전투에서 데뷔한 영국군 전차 ‘마크 Ⅰ’보다 장갑차가 1년 3개월여 빨리 나왔다. 영국 해군이 1914년 12월 3일 롤스로이스사로부터 장갑차 3대를 납품받은 것이 최초다. 물론 장갑차의 효시는 이보다 훨씬 빠르다. 고대 중국과 영국에서는 동물의 힘으로 움직이는 무장 마차가 전장에 나온 적도 있다.
영국 기계공학자 심스는 1898년 내연기관이 달린 4륜 자전거 전면에 방탄판을 설치하고 기관총을 장착한 전투차를 선보였다. 심스는 1902년 독일 다임러 차에 철갑과 기관총을 단 ‘모터 전투차’를 제작했으나 보어전쟁이 예상보다 빨리 끝나 실전 기회를 놓쳤다. 몇몇 시제품이 더 나왔지만 ‘처음으로 대량생산돼 실전에 투입된 장갑차’는 롤스로이스 장갑차다. 장갑차를 발주한 군대는 육군이 아니라 해군.
영국 해군 항공대는 대공 및 수색작전용으로 장갑차를 원했다. 영국을 폭격하려는 독일 비행선에 맞서 출격한 전투기가 격추될 때마다 달려가서 조종사를 구출하는 임무를 맡았다. 영국은 12대로 구성되는 장갑차 중대 6개를 꾸리고 서부전선에도 보냈으나 쓸모가 없었다. 참호전에서 장갑차의 역할이 없었던 탓이다. 대신 중동지역에서는 큰 성과를 거뒀다. 아랍 원주민 부대를 조직해 오스만제국군의 철도와 보급로를 끊은 ‘아라비아의 로렌스’는 “롤스로이스 장갑차는 루비보다 귀하다”는 말을 남겼다.
롤스로이스 장갑차는 항공기용 엔진 생산을 위해 1917년 생산이 중단됐지만 전후 수많은 개량을 거쳐 아일랜드 내전과 2차 대전에서도 활용됐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길 만 하다. 최고급 승용차를 장갑차로 바꾼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당시 시점에서 롤스로이스는 좋은 차를 만드는 유망 신설업체로 평가받았다. 1906년에 설립돼 내구성 좋은 차라는 명성을 일찌감치 얻었지만 세계 최고급 차량은 아니었다.
오히려 전쟁을 통해 내구성을 인정받으며 롤스로이스는 명성을 굳혔다. 전쟁은 기회였던 셈이다. 본질적으로 최고의 인재와 도구를 전장에 투입하는 국가가 전쟁에서 이긴다. 본격적인 장갑차가 등장했던 116년 전 조선은 마차조차 흔하지 않은 나라였다. 이제는 단순한 기술 습득을 넘어 새 역사를 쓰려는 참이다. 한화디팬스의 신형 장갑차 ‘레드 백’은 10조 원 규모인 호주의 차세대 궤도형 장갑차 최종 후보에 올라 독일산과 경합 중이다. 미국의 차기 장갑차에 선정될 가능성도 있다. 성공을 빈다.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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