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당 소속 의원 전원에게 “주주 자본주의가 우선이라는 시각을 바꾸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기업이 주인인 주주의 가치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경영하게 국가가 보장할 것이 아니라 법과 제도를 통해 일자리 창출과 근로자 복리후생 향상이라는 공동선(Common good)을 향해 가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이 새해 벽두에 의원들에게 이 같은 화두를 던지면서 국민의힘도 관련 입법 논의에 돌입할 전망이다.
11일 국민의힘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당 소속 의원 102명에게 ‘마르코 루비오(Marco Rubio)의 공공선 자본주의와 좋은 일자리’ 보고서를 보냈다. 보고서는 공공재를 의미가 담긴 ‘공공선(Public)’으로 번역했지만, 학계는 일반적인 모두의 이익을 뜻하는 ‘공동선(Common)’으로 보고 있다.
이 보고서는 21세기에 들어와 신흥 산업의 급격한 성장과 중국과의 무역 경쟁의 패배 등으로 미국 경제가 급변하며 일자리 창출에 실패하고 양극화가 심화하며 사회 공동체의 이익이 훼손됐다고 설명한다.
루비오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미국 정부가 “미국의 노동자들이 중국의 위협에 노출돼도 관계없다는 구조적인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기업들이)주주들에게 돈을 되돌려 주는 것이 다른 권리들보다 우위에 있었고 노동자들과 나라를 위해 이윤을 투자할 의무는 중요한 과제가 아니었다”고 비판하고 있다. 루비오는 이에 대한 해법으로 공동선 자본주의를 제시했다. △국가가 시장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이 국가를 위해 존재 △기업은 이윤 추구와 공공선을 위한 재투자의 의무를 가짐 △공동선의 핵심은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내는 제조업 부흥이 중요 등이다.
특히 루비오는 미국의 어린이들이 일확천금을 바라는 ‘유튜버 스타’가 되는 것을 경계하며 “모든 미국 아이들이 기계공이나 건축전문가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국가는 이런 일(제조업)들이 더 많아지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업이 주주의 이익을 희생하더라도 좋은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투자를 해야 하고 국가는 이에 대한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는 것이다. 일자리를 만들고 급여를 인상하는 기업에게 조세 특혜를 주고, 중소기업 관련 정부부처를 강화하고, 외국에 있는 제조업체들이 국내로 돌아오도록 유도하는 정책들이다.
이 같은 주장은 미국식 주주자본주의보다는 고객과 노동자, 사회까지 기업을 둘러싼 모두의 이익 향상을 주장하는 독일식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에 가깝다. 독일에서 유학한 김 위원장이 또 독일식 모델을 의원들에게 제시한 것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6월 취임 후에도 독일 기독민주당(보수정당)이 신자유주의의 문제를 깨닫고 정책 수정을 한 사례를 들며 “나를 사회주의자로 비판하지 말라”고 말하기도 했다.
관련기사
눈여겨볼 대목은 루비오가 공동선 자본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주장한 대부분의 정책들은 국내에서 시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일자리를 만드는 기업에 세제혜택을 주는 제도는 조세특례제한법상 고용창출투자세액공제가 있다. 중소기업 부처의 강화의 경우 우리나라는 중소기업청이 장관급 부처인 중소벤처기업부로 승격됐다. 또 해외에서 복귀하는 ‘U턴 기업’에 대해서도 청산·입주지원은 물론 보조금 등도 지원하고 있다.
루비오의 주장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로 미국에서 더욱 심화된 양극화와 중국 첨단산업의 급부상으로 미국의 저임금 일자리는 물론 고임금 일자리까지 치열한 경쟁에 접어든 국면에 대한 해법이다. 상황이 다른 한국에 대입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말이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 관계자는 “한국은 보수우파 정당이 마치 양극화를 조장하는 것처럼 알려지고 기업은 나쁜 일을 하는 집단처럼 매도되는 현실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이 적극적인 정책 발굴과 법안 발의로 이 같은 시각을 해소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통으로 알려진 한 의원은 “한국의 보수우파는 경제의 중심인 기업의 존재가치와 긍정적인 역할을 국민들에게 설득해내는 데 실패했다”며 “우리 사회는 기업을 선과 악의 구도로 보는데, 기업을 일자리를 만들고 이익을 분배하는 국가의 중요한 존재로 알리고 노력하는 부분을 인정하자는 주장”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단기적으로는 주주 가치가 훼손되더라도 기업이 속한 국가의 양극화가 해소되고 기업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도 개선돼 장기적으로는 기업과 국가, 국민 모두가 좋은 방향이라는 것”이라고 했다.
일각에서는 김 위원장이 4월과 내년 대선을 앞두고 의원들에게 적극적인 대중영합주의(포퓰리즘) 정책을 주문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대해 김 위원장은 언론을 통해 “다른 경제철학도 관심을 가지라는 뜻”이라며 “이 정도를 좌클릭이라고 염려한다면 정치인으로서 자질이 부족한 것”이라고 전했다. /구경우기자 bluesquare@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